월성 해자 목간의 연구 성과와 신 출토 목간의 판독Research and Perspective on the Silla Wooden Documents, excavated at the Moat of the Weolseong Palace in Gyeongju
- Other Titles
- Research and Perspective on the Silla Wooden Documents, excavated at the Moat of the Weolseong Palace in Gyeongju
- Authors
- 윤선태
- Issue Date
- Jun-2018
- Publisher
- 한국목간학회
- Keywords
- 월성 해자; 목간; 이두; 세금; 6部; 문서 목간; Weolseong Palace’s moat(월성해자); Wooden documents(목간); Idu letters(이두); tax(세금); Six-Bu units in the Capital city(6부); Official wooden documents related to the administrative record(문서목간)
- Citation
- 木簡과 文字, no.20, pp 79 - 104
- Pages
- 26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木簡과 文字
- Number
- 20
- Start Page
- 79
- End Page
- 104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9422
- DOI
- 10.35302/wdis.2018.06.20.79
- ISSN
- 2005-4122
- Abstract
- 월성 해자 목간은 대체로 작성 시기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걸쳐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왕경 6부를 비롯한 각 지방에 대한 세금 수납과 관련하여 제작한 장부나 문서 행정의 정연함을 보여주는 문서목간들이 많았다. 문서 수발의 주체와 객체로 寺典, 典太等(=典大等), 典中大等, 沙喙(=沙梁宮), 及伐漸典(=及伐斬典) 등이 기록되어 이들 관청과 관인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또 지방의 외위 소지자를 왕경에 머무르게 하여 지방 지배에 활용하였던 上守吏 제도가 통일 전에 이미 시행되고 있었음을 새롭게 인지할 수 있었다. 한편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 시기에 이미 조사, 선어말어미 등 이두 표기에 큰 진전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간의 내용에 대한 필자의 새로운 해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7세기 신라의 6부는 정치적 측면을 강하게 내포한 구조로 구성되어, 일차적으로 王都로 분류되는 ‘里로 편제된 지역’, 또 중고기 6부 지역이었던 대성군·상성군 내에 주로 위치했던 ‘리로 편제되지 않은 지역’, 그리고 고려의 향·소·부곡처럼 월경지적인 성격으로 퇴화나 절화 등 왕경 주변의 군 내에 위치하면서 왕실이나 각 부에 예속되어 있던 촌락 지역 등 상당히 누층적으로 편제되었을 가능성이 예상된다. 다만 퇴화나 절화 등에 위치했던 각 부에 예속된 촌락민은 왕경인으로 편제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한편 세금 수납 장부나 부찰에 受, 今受, 不, 不有 등의 약어를 사용하여 기입하였다. 그 정확한 해석은 추후의 자료적 증가가 필요하지만, 장부를 만들어 일차 세금 수납을 확인하고(受), 재차 수납 사실 등을 조사하며 추기하는 작업(今受)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不’는 ‘不受’의 약칭으로 ‘수납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不有’는 애초에 해당 지역에는 국가적 책무가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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