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전리사지 출토 고승비편의 내용과 흥전리사지의 역사적 성격An Examination on the Historic Meaning of Heungjeon-ri Temple - seen through the contents of the Stele Fragments in the Temple Site -
- Other Titles
- An Examination on the Historic Meaning of Heungjeon-ri Temple - seen through the contents of the Stele Fragments in the Temple Site -
- Authors
- 최연식
- Issue Date
- Jun-2018
- Publisher
- 한국목간학회
- Keywords
- Heungjeon-ri Temple Site; the Complete Collection of Buddhist Scriptures(Tri-pitaka); Monk Superintendent of the Country(國統); Purple Garment with Golden Fish Pendants(紫金魚袋); Chan Monastery during the Late Shilla to Early Goryeo; 흥전리사지; 大藏經; 國統; 紫金魚袋; 나말여초 선종 사찰
- Citation
- 木簡과 文字, no.20, pp 335 - 353
- Pages
- 19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木簡과 文字
- Number
- 20
- Start Page
- 335
- End Page
- 353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9406
- DOI
- 10.35302/wdis.2018.06.20.335
- ISSN
- 2005-4122
- Abstract
- 이 글에서는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사지에서 수습된 비편들을 판독·해석하고, 이를 기초로 비석 주인공의 행적과 불교계에서의 위상, 그리고 비석 건립 시기와 건립 주체 등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14점의 비편들은 비석 주인공의 행적을 기록한 본문[陽記] 9점과 비석 건립 과정을 기록한 陰記 5점으로 구분되며, 양자는 서체와 크기, 기록 방식 등에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문 비편의 내용을 통해 비석의 주인공은 蘇判의 관등을 가진 眞骨 金氏의 아들로 태어나 10여 세에 출가하여 성실한 수행으로 많은 祥瑞를 드러냈고, 이후 구족계를 받은 이후에는 계율을 지키는 등 수행에 힘써 많은 명망을 얻은 선종승려였으며, 咸通년간(860-873)에 입적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850년대에 국왕에게 당나라로부터 大藏經을 구해올 것을 건의하였고, 國統의 직책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음기의 내용을 통해서는 이 비석의 건립을 주도한 인물이 당시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면서 ‘賜紫金魚袋’임을 내세우던 지방 유력자이고, 비석 본문 혹은 음기의 작성과 書寫, 刻字 등에 이 절의 승려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비석이 건립된 시기는 전국적으로 독자적 세력을 갖는 유력자들이 대두하던 10세기 전반기로 추정된다. 이로 볼 때 흥전리사지는 9세기 중엽에서 10세기 전반기까지 비석 주인공과 그 문도들에 의해 운영되던 신라 말-고려 초기의 강원도 동부 지역의 유력한 선종 사찰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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