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와 표충사의 3·1운동The March First Movement of the Tongdo-sa temple and the Pyochung-sa temple
- Other Titles
- The March First Movement of the Tongdo-sa temple and the Pyochung-sa temple
- Authors
- 한상길
- Issue Date
- Nov-2018
- Publisher
- 한국불교학회
- Keywords
- The March First Movement; Tongdo-sa; Pyochung-sa; Han; Yong-un; Oh; Taek-eon; Oh; Eung-seok; Yang; Dae-eung.; 3·1운동; 통도사; 표충사; 한용운; 오택언; 오응석; 양대응
- Citation
- 한국불교학, no.88, pp 209 - 242
- Pages
- 34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국불교학
- Number
- 88
- Start Page
- 209
- End Page
- 242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8895
- DOI
- 10.22255/JKABS.88.8
- ISSN
- 1225-0945
- Abstract
- 1919년 3·1운동 이후 불교계가 주동한 사찰의 만세운동은 14건이다. 이 중 범어사의 만세운동만이 자세히 연구되었고 나머지 13건의 만세운동에 관해서는 발생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연구자의 무관심과 연구 자료의 부족 등이 원인이다. 최근 독립운동에 관한 다양한 자료 전산화가 진행되어 통도사와 표충사 3·1운동 관련 새로운 자료를 탐구할 수 있었다.
2월 28일 밤 한용운은 중앙불전 학생들에게 지방 사찰운동을 전개할 것을 당부하였다. 학생들은 범어사와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대흥사 각자의 재적사찰로 내려가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통도사의 오택언과 김상문, 양대응 등은 신평장터에서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통도사 승려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말사인 표충사의 만세운동을 기획하였다. 오응석과 이장옥, 오학성, 손영식, 이찰수, 김성흡 등은 태룡리 장터에서 「선서」와 태극기 등을 배포하며 1천 5백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폭력투쟁까지 감행한 대규모의 농민항쟁이었다.
불교계의 3·1운동은 청년 승려와 각 사찰의 학교, 즉 지방학림과 보통학교 등의 학생들이 주축으로 참여하였다. 사찰은 만세운동을 모의하기에 적합한 장소였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등의 각종 물품을 제작하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이처럼 사찰의 젊은 승려와 학생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여기에 지역주민들이 적극 동참하였다. 만세운동을 널리 확산하기 위해 사찰 경내에 국한하지 않고 많은 대중이 운집하는 장소와 시기를 선택하였다. 통도사와 표충사의 3·1운동은 독립운동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승려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민족의 계몽과 교육, 독립운동에 투신하면서 불교의 위상을 수립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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