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년 深河戰役의 미결 지리 고증A Historical Research on Unresolved Geography of Shimha Battle in 1619
- Other Titles
- A Historical Research on Unresolved Geography of Shimha Battle in 1619
- Authors
- 김일환; 이승수; 신춘호; 임문성
- Issue Date
- Sep-2019
- Publisher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Keywords
- 牛毛嶺; 深河; 釜山; 富車 들판; 家哈嶺; 李民寏; 柵中日錄; Niumaoling Pass; Shimha; Pushan Mountain; Bucha Field; Gahapryeong Pass; Yi Min-hwan; Chaekjungillok(Prisoner’s Dairy by Yi Min-hwan)
- Citation
- 어문연구(語文硏究), v.47, no.3, pp 171 - 201
- Pages
- 31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어문연구(語文硏究)
- Volume
- 47
- Number
- 3
- Start Page
- 171
- End Page
- 201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7706
- DOI
- 10.15822/skllr.2019.47.3.171
- ISSN
- 1229-1617
- Abstract
- 이승수 · 김일환 · 신춘호 · 임문성, 2019, 1619년 심하전역의 미결 지리 고증, 183 : 171~201 이 논문은 1619년 3월에 있었던 심하전역(深河戰役)의 현장 중 일부 구간에 대한 정밀 지리 고증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이 구간은 조선군이 우모령(牛毛嶺) 행군을 시작한 ‘平頂山’부터 조선군 포로가 끌려가 머문 ‘奴城(赫圖阿拉城) 밖 10리 지점’까지이다. 2월 28일에서 3월 6일에 이르는 8일 동안 이 지리공간에서는, 오늘날 돌아보아도 가슴 아픈, 그리고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도 지나치지 않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비극의 장소를 정확하게 비정함으로써, 희미해진 역사를 환기하고 반추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 본고의 취지이다. 문헌 검토와 현지 조사에 현장 탐문을 더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深河가 강이 아닌 마을의 이름일 가능성을 확인했다. 8,9천 명의 조선군이 전사하고, 나머지 4,5천 군사들이 피신했던 장소는 釜山과 그 아래 벌판으로 비정했다. 조선군이 포로가 되어 끌려간 길을 처음으로 구체적인 논거와 함께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전투로 발생한 고통과 비애는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이 전투를 외면·망각했던 권력의 무능과 위선은 여전하다. 고통과 비애의 말을 들어주고, 무능과 위선을 직시하는 것, 이것이 본고를 작성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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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s - College of Humanities > Division of Korean Language, Literature, and Creative Writing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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