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고려 전기 고승의 洗骨葬과 장례 문화The Practice of Bone-Cleaning Burial and Funeral Culture of Buddhist Monks from the Three Kingdoms to the Early Goryeo Period
- Other Titles
- The Practice of Bone-Cleaning Burial and Funeral Culture of Buddhist Monks from the Three Kingdoms to the Early Goryeo Period
- Authors
- 김기현; 최연식
- Issue Date
- Dec-2025
- Publisher
- 진단학회
- Keywords
- 불교 장례 문화; 洗骨葬; 骨崇拜; 肉脫; 假埋葬; Buddhist funerary culture; Bone-Cleaning Burial; Bone veneration; Flesh removal; Temporary burial
- Citation
- 진단학보, no.145, pp 31 - 58
- Pages
- 28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진단학보
- Number
- 145
- Start Page
- 31
- End Page
- 58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63748
- ISSN
- 1013-4719
- Abstract
- 본 연구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전기에 이르기까지 고승들 사이에서 행해진 세골장을 독립된 장법으로서 이해하여 그 실체와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세골장은 일반적인 매장과 달리 시신을 일정 기간 임시로 안치하여 피육을 탈락시킨 뒤 뼈만을 추려 다시 안장하는 장법으로, 뼈의 정결함을 중시하는 골숭배 관념에 기반한다. 금석문을 중심으로 문헌 및 고고학 자료 등을 종합한 결과, 고승의 세골장 역시 이러한 골숭배 관념에 입각하여 이뤄졌으며, 11세기까지 널리 시행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고승의 세골장은 가매장을 통한 육탈의 과정을 1차적으로 거쳤다. 이때 시신은 정화의 단계에 놓인 존재로 인식되어, 격리와 추모를 목적으로 사찰 인근 산중의 시설에 안치되었고, 동시에 불교적인 맥락에서 희사의 대상이었다. 이후 1-3년에 걸쳐 육탈이 끝나면, 유골을 수습하여 예배상으로 조성하거나 승탑 하부에 안치함으로써 본장이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유골은 일종의 승사리로 인식되었는데, 이는 세골장의 골숭배 관념과 불교의 사리 신앙이 습합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12세기 이후의 자료에서는 화장이 점차 고승의 주요 장법으로 부상한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는 세골장에서 화장으로의 단순한 장법 변화라기보다는, 세골장에서 핵심을 이루는 육탈의 방식이 가매장에서 화장으로 전환된 결과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화장으로의 방식 전환은 송 문화의 유입에 따른 고려 사회 전반의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세골장은 불교 문화의 수용 과정에서 기존 문화와 상호작용한 양상을 보여준 사례로, 삼국-고려시대의 불교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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