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 德宗 貞元 시기 淮西 藩鎭의 성격 -吳少誠의 태도를 중심으로-The Huaixi Province in Zhenyuan Period Under the Reign of Tang Dezong
- Other Titles
- The Huaixi Province in Zhenyuan Period Under the Reign of Tang Dezong
- Authors
- 정병준
- Issue Date
- Dec-2020
- Publisher
-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 Keywords
- Tang Dezong; Huaixi Province; Wu shaocheng; Autonomous Province; Li Shigu; 당 덕종; 회서 번진; 오소성; 할거 번진; 이사고
- Citation
- 동국사학, no.69, pp 375 - 416
- Pages
- 4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동국사학
- Number
- 69
- Start Page
- 375
- End Page
- 416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5808
- DOI
- 10.22912/dgsh.2020..69.375
- ISSN
- 1225-0376
- Abstract
- 이 글은 4왕의 난 이후 정원 시기(785~805)에 淮西節度使 吳少誠이 보인 태도를 통해 당시 번진체제의 기본구조를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오소성은 할거 번진이면서도 다른 할거 번진들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즉 기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주변으로의 세력 확장을 위해 매우 공격적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물론다른 할거 번진들도 기존의 상황을 그대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오소성은 그 행동 방식과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그런 만큼 덕종도 오소성에 대해서는 다른 대응을 하였다.
정원 15년(799) 8월 오소성이 陳許 번진을 공격하자 마침내 10월 덕종이 17개 번진에게 오소성 토벌을 명하였다. 그 안에는 할거 번진인 成德·幽州·魏博·淄靑도 있었는데, 이는 번진들에 대한 당시 덕종의 한계를 보여준다. 오소성에 의한 혼란을 틈 타 네 번진도 언제든 세력 확장을 노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듬해(800) 5월 당군이 오소성에게 대패하자 산남동도절도사 우적이 남쪽의 漢水 남쪽 지역을 점거할 뜻을 품었는데, 이는 당조와 번진의 세력균형이 무너지면 누구든 반역적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전선이 조금 교착되자 같은 해(800) 10월 오소성이 갑자기 군대를 철수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의 영토가 자칫 다른 번진에게 위협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 덕종의 오소성 토벌 실패는 아직 조정이 할거 번진을 제압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당시 할거 번진의 세력은 조정보다 우위에 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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