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英祖의 관찬官撰 서적 간행 정책과 실행 방식The Policy and Method of Implementation of King Yeongjo's Publication of Books Compiled by Government
- Other Titles
- The Policy and Method of Implementation of King Yeongjo's Publication of Books Compiled by Government
- Authors
- 권기석
- Issue Date
- Dec-2024
- Publisher
- 국립고궁박물관
- Keywords
- 영조(英祖); 어제서(御製書); 목판; 활자; 교서관(校書館); 감영(監營); 번각(飜刻); 언해(諺解); King Yeongjo; Eojeseo (御製書; a preface written by the king); printing woodblock; moveable type; Gyoseogwan (校書館); Gamyeong (監營); Beongak (飜刻; republishing); Eonhae (諺解; Korean translation)
- Citation
- 고궁문화, no.17, pp 7 - 48
- Pages
- 4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고궁문화
- Number
- 17
- Start Page
- 7
- End Page
- 48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56729
- DOI
- 10.23008/kjpm.2024..17.001
- ISSN
- 1976-6785
- Abstract
- 본고는 학자 군주로 잘 알려진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재위 기간에 간행된 관찬 서적의 내용과 인쇄 및 보급 방식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영조의 서적 간행 정책의 전모를 이해하고자 한다. 영조가 자신의 정책적 의지를 반영한 서적으로 어제훈서, 의리명변서, 국가제도서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재위 중반 및 후반기에 집중 간행되었다. 반면에 경전, 역사서, 문집 등의 서적은 정치적 목적성이 개입되기 어려웠고 상시적인 수요를 반영하여 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중에도 영조가 어제서문을 통해서 자신의 편찬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다.
서적의 특성에 따라 목판과 활자라는 두 가지 인쇄 수단 중 적합한 것이 채택되었다. 목판은 장기 보존이 필요하거나 동일 저술의 지속적인 인쇄가 필요한 경우에 사용되었고, 간행 장소는 중앙의 교서관과 각도의 감영이었다. 이에 비해 활자는 거의 중앙정부에서만 사용되었는데, 경우에 따라 중앙의 간행물을 지방에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번각과 언해라는 수단이 사용되었다. 영조는 완성된 서적의 반사 대상도 직접 지정하여, 관련된 관청이나 관원에게 전달하였고, 사고에 영구 보존하기도 했다. 인쇄를 마친 목판에 대해서는 널리 사적(私的)인 인쇄를 허용하는 ‘광인廣印’이라는 조치도 행해졌다. 영조의 강한 의지에 따라 국가적 역량과 효과적 인쇄술을 활용하여 진행된 관찬 서적 간행 사업은 정조 대 어정·명찬서와 윤음의 보급 정책으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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