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와 한암의 관계 검토The Review on the Relationship between Gu-Ha and Han-Am
- Other Titles
- The Review on the Relationship between Gu-Ha and Han-Am
- Authors
- 이원석
- Issue Date
- Jun-2022
- Publisher
- 대각사상연구원
- Keywords
- Gu-Ha; Han-Am; Relationship; Youngchuksan Mountain; Odaesan Mountain; Tongdosa Temple; Sangwonsa Temple; Disciple.; 구하; 한암; 관계; 영축산; 오대산; 통도사; 상원사; 상좌.
- Citation
- 대각사상, no.37, pp 105 - 142
- Pages
- 38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대각사상
- Number
- 37
- Start Page
- 105
- End Page
- 142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3043
- DOI
- 10.35768/taegak.2022..37.004
- ISSN
- 1229-1080
- Abstract
- 본 고는 1900∼1910년까지의 전기와 1926∼1951년의 후기로 대별하여 구하 천보(九河天輔, 1872∼1965)와 한암 중원(漢巖重遠, 1876∼1951) 및 그 상좌나 제자 사이의 관계를 고찰한 것이다. 전기에 통도사의 실력자로 부상하던 구하는 1900-02년 백운암이나 범어사에 머문 한암을 인지하였다. 한암도 1900년에 이미 구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1900년 성해를 법사로 삼은 구하는 1904,5년 내원암에서 석담을 법사로 삼은 한암과 사촌 사형제가 되었다. 양자는 법계와 함께 통도사 내원암을 공통요소로 삼았지만, 편지나 한시를 수작하지 않았다. 당시 구하가 만나거나 교류한 서해담·나청호·김경운·진진응·박한영 역시 한암과 관련하여 고찰하였다.
한암이 오대산에 머문 후기, 양자의 관계는 보다 진전되었지만, 우호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1929년과 1934년에 한암과 구하는 성해와 석담의 영찬을 주고받았지만, 1931년 한암이 통도사를 방문하였을 적에 구하를 만나지 못하였다. 통도사 주지에서 물러나 칩거하던 구하는 1937년 총본산의 건설이나 1941년 조계종의 창립과 관련하여 중앙의 교단에서 다시 활약하였다. 당시 월정사 주지 이종욱은 그 주역이었고, 초대 종정은 한암이었다. 1949년 10월 구하는 조계종 3대 총무원장으로 교정 한암과 만났다. 1944년∼1950년 사이 한암은 경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하에게 안부를 전하였고, 구하도 서한·시문 3편을 보냈지만, 종단에서의 지위를 넘어서지 않았다. 구하는 1951년 5월 부산의 묘심사에서 거행된 한암의 49재와 봉도회 대 –노구로 불참하였지만- 로 한암의 법은과 좌탈을 추도하며 환생을 빌었다. 양자와 연결되는 송설우와 윤퇴운도 검토하였다.
반면에 구하와 한암은 각각 오대·영축의 문도와 밀접하였다. 그 대상은 용명·월하·동성·난암·보문·탄허와 자운이었다. 구하와 한암의 관계는 경봉과 한암에 비해 의의나 맛깔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양자는 근현대 영축·오대 문도의 교류와 근현대 한국 불교계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Files in This Item
-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 Appears in
Collections - Dharma College > 1. Journal Articles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