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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初의 對朝鮮 소 무역과 그 배경A study of the cattle trade to Joseon in the early Ming Dynasty

Other Titles
A study of the cattle trade to Joseon in the early Ming Dynasty
Authors
임경준
Issue Date
Dec-2022
Publisher
동아시아고대학회
Keywords
소; 耕牛; 明朝; 朝鮮; 遼東都司; 靖難의 役; cattle; farming cattle; Ming Dynasty; Joseon Dynasty; Jingnan campaign
Citation
동아시아고대학, no.68, pp 275 - 301
Pages
27
Indexed
KCI
Journal Title
동아시아고대학
Number
68
Start Page
275
End Page
301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6160
DOI
10.17070/aeaas.2022.12.68.275
ISSN
1229-8298
Abstract
靖難의 役에서 승리하여 제위에 등극한 永樂帝가 조선의 太宗을 새로 책봉함에 따라 명ㆍ조선 관계는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양국 관계가 자리를 잡으면서 인적ㆍ물적 측면에서의 상호 교류 역시 활기를 맞이하게 된다. 명과 조선 사이의 물적 교류를 대표하는 물품이 軍馬와 耕牛다. 조선은 명의 요구대로 永樂 4년과 宣德 7년 두 차례에 걸쳐 약 1만 6천 마리의 소를 수송하였다. 조선의 소는 모두 遼東都司 산하의 屯田에 배치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지하듯이 明初 衛所制는 휘하 屯軍의 둔전 경작에 기반을 둔 병농일치적 자급체제 하에서 운영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에 산재한 衛所 휘하의 둔전에는 工部 산하 屯部에서 농기구와 소를 공급했는데, 국고에서의 공급이 어려울 경우에는 인근에서 조달하여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永樂帝와 宣德帝가 조선과의 무역을 통하여 遼東都司에 소를 공급한 까닭은 이러한 명의 둔전 정책과 연동된 결과라 판단된다. 靖難의 役에서 燕王의 근거지였던 北平의 배후에 위치했던 탓에 遼東은 燕王軍과 建文軍 사이의 전투가 빈발했던 지역이었다. 전란으로 말미암아 폐사한 소의 손실액을 보전함으로써 遼東都司의 둔전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명ㆍ조선간의 소 무역이 단행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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