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世規의 패전을 소재로 한 병자호란 서사의 재구성 양상Aspects of reconstruction of the Byeongjahoran narrative based on Jeong Se-gyeong's defeat
- Other Titles
- Aspects of reconstruction of the Byeongjahoran narrative based on Jeong Se-gyeong's defeat
- Authors
- 김일환
- Issue Date
- Dec-2023
- Publisher
-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 Keywords
- 丙子胡亂; 鄭世規; 敗戰爲功; 勤王; 實記; Manchu War; Jeong Se-gyu; A defeat that became a merit; battle for the king; nonfiction
- Citation
-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v.77, no.77, pp 33 - 59
- Pages
- 27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 Volume
- 77
- Number
- 77
- Start Page
- 33
- End Page
- 59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0616
- DOI
- 10.21794/ddhm.2023.77.33
- ISSN
- 1229-4411
2586-4572
- Abstract
- 병자호란의 전후 처리 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 임금을 포위에서 풀어내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근왕에 나섰다 패전하여 전사한 고위 관료들은 포상을 받고, 생존한 장졸들은 크고 작은 처벌을 받았다. 전투에서 이겼기에 생존한 장수들도 책임 공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궤멸적인 패배를 입었음에도 목숨을 부지한 鄭世規는 도리어 그 패전을 공로로 인정받아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차적으로 鄭世規가 속한 정파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는 병자호란 패전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이를 계기로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인조의 의도도 있었다. 아울러 ‘근왕군에 참여했다’는 논리로 충성을 증명하고, 보훈 대상자가 되어 현실적인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사대부들의 욕망이 가세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작성된 사료와 개인 실기 자료, 후손들의 추모 기록을 다양하게 살펴, 이런 복잡한 양상을 추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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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s - College of Humanities > Division of Korean Language, Literature, and Creative Writing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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