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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文王과 狼山King Sinmun and Nangsan (狼山) : A Study on the Location and Function of Naryeok (奈歷) in the Silla National Ritual System

Other Titles
King Sinmun and Nangsan (狼山) : A Study on the Location and Function of Naryeok (奈歷) in the Silla National Ritual System
Authors
윤선태
Issue Date
Jun-2023
Publisher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Keywords
神文王; 狼山; 祀典; 大祀; 習比部; 奈歷; 忉利天; 帝釋; King Sinmun (神文王); the Nangsan (狼山) Mountain of Gyeongju; the Silla National Ritual System (祀典); the largest ritual (大祀); the Seupbi-Bu (習比部; the administrative district of the Silla capital); Naryeok (奈歷); Doricheon (忉利天; Trāyastriṃśa); Jeseok (帝釋; Indra)
Citation
신라문화, v.62, pp 7 - 26
Pages
20
Indexed
KCI
Journal Title
신라문화
Volume
62
Start Page
7
End Page
26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0200
DOI
10.37280/JRISC.2023.6.62.7
ISSN
1229-0939
2714-0628
Abstract
신라의 祀典 체계는 당나라 貞觀禮에 의거한 점이 확인되어, 대체로 신문왕의 唐禮 요청 직후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신문왕은 당나라의 大ㆍ中ㆍ小祀체계를 받아들였지만, 당나라와 달리 大祀에서 祭天과 宗廟를 제외하고 三山 등 산천에 대한 제사로만 大ㆍ中ㆍ小祀를 편성하였다. 이는 나당전쟁 이전으로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했던 신라가 天子의 禮에 저촉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당에게 강하게 내비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당시의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학계의 이러한 추론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신라 내부적으로는 삼산에 대한 제사를 산천에 대한 제사로만 볼 수 없는 점이 있다. 삼산은 신라 건국 주체세력의 핵심 권역에서 숭배되었던 산으로 일찍부터 護國의 聖所로 중요시되었다. 특히 삼산 중 첫 번째로 거론되는 習比部에 위치한 奈歷은 唐의 大祀처럼 제천과 종묘에 대한 제사의 장소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나력은 왕도 6부의 공간구조로 볼 때 현재의 경주 狼山으로 비정된다. 奈歷(奈林)의 ‘奈’는 奈乙처럼 天神 降臨의 뜻으로 이해되며, 마립간기 이래 천신이 내려와 놀던 神遊林으로 신성시되었다. 이후 이곳에 중대 권력이 나당전쟁의 승리를 이끌기 위한 호국불교의 전당인 四天王寺를 창건하면서, 낭산은 忉利天으로 표상되어 최고의 하늘신인 帝釋의 住處로 자리 잡게 된다. 한편 이곳에 건립되었던 傳황복사는 중대 권력에 의해 宗廟聖靈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기능하였다. 이로 인해 그 동편에 신문왕의 장지(전진평왕릉)가 마련되었고, 종묘성령을 위한 삼층석탑의 造營으로 이어졌다. 필자는 과거 신라 中祀의 五岳ㆍ四鎭ㆍ四海ㆍ四瀆 제사에 대해 형식적으로는 당의 의례를 수용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신라 왕경의 사방과 중앙에 위치해 있었던 성전사원과 연결하여 구현된 불교적 의례였다는 견해를 제기한 바 있다. 신라의 大祀 역시 『삼국사기』 찬자가 평가한 것과는 달리 산천에 국한된 제후의 예로만 볼 수 없는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필자는 삼산의 奈歷에 대한 의례를 祭天과 宗廟에 대한 당의 대사 의례의 본질적 속성을 불교적 세계관을 통해 구현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신라의 국가 의례는 외형적인 면에서는 당의 국가 의례를 준용하였던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중고기 이래 祭天儀禮的인 요소를 불교의례를 통해 의연히 保持하려 하였던 신라 독자의 제사 체계였다. 물론 신라 중대왕권은 唐의 貞觀禮를 수용하는 등, 기본적으로 당과 사대관계를 유지하려 한 점이 있지만, 太宗 武烈王의 廟號 갈등 문제로 잘 알 수 있듯이, 대제국인 唐과의 싸움에서 얻었던 자신감 또한 잃지 않았다. 奈歷의 제석천에 대한 大祀나 성전사원에 기초한 신라의 독자적인 中祀 의례는 이러한 중대왕권의 의지 속에서 창출되었으며, 중대 왕권은 그러한 의례를 통해 신라국가를 천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신의 절대성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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