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 憲宗의 藩鎭改革과 魏博節度使 田弘正唐宪宗的藩镇改革和魏博节度使田弘正
- Other Titles
- 唐宪宗的藩镇改革和魏博节度使田弘正
- Authors
- 정병준
- Issue Date
- Apr-2023
- Publisher
- 중국사학회
- Keywords
- Tang Xianzon; Weibo; Tian Hongzheng; Tianbu; Li Shidao; 당 헌종; 위박; 전홍정; 전포; 이사도; 唐 宪宗; 魏博; 田弘正; 田布; 李师道
- Citation
- 중국사연구, no.143, pp 59 - 90
- Pages
- 3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중국사연구
- Number
- 143
- Start Page
- 59
- End Page
- 90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0073
- DOI
- 10.24161/CHR.143.059
- ISSN
- 1226-4571
- Abstract
- 魏博節度使 田弘正은 절도사에 오르자(되자) 바로 朝廷에 귀순하였는데, 거기에는 대략 세 가지 원인이 있었다. 즉 첫째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좋아한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개인적 성향이고, 둘째는 시대 추세를 보고 내린 결단이고, 셋째는 藩鎭 내부의 모순상황에 따른 것을 들 수 있다. 전홍정은 조정에 귀순한 후 위박을 대대적으로 개혁하였다. 즉 “魏州自承嗣已來, 館宇ㆍ服玩有踰常制者, 悉命徹毀之, 以正廳大侈不居, 乃視事于採訪使廳. 賓僚參佐, 請之於朝”. 이는 諸侯的 地位에 맞게 행동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헌종이 成德을 토벌하고 淮西를 토평할 때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平盧를 토벌할 때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평로의 토벌로 헌종의 번진개혁은 일단 완성되었다.
穆宗 시기에 河北三鎭은 다시 割據藩鎭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조정의 위협이 되지 못하였고 이후 번진체제는 한동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 점에서 헌종의 번진개혁은 큰 의미를 지녔는데, 그 과정에 전홍정의 귀순이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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