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堂 崔南善의 『三國遺事』 인식과 「三國遺事 解題」A Study on Yukdang(六堂) Choi Nam-Sun(崔南善)'s Recognition over 『Samgukyusa』 and 「Samgukyusa Interpretation」
- Other Titles
- A Study on Yukdang(六堂) Choi Nam-Sun(崔南善)'s Recognition over 『Samgukyusa』 and 「Samgukyusa Interpretation」
- Authors
- 고영섭
- Issue Date
- Aug-2014
- Publisher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 Keywords
- 단군론; 불함문화론; 삼국유사; 삼국유사 해제; 민족의식; 문화의식; 대립의식; 단군론(Dangun Theory); 불함문화론(Bulham Cultural Theory); 삼국유사(Samgukyusa); 삼국유사 해제(Samgukyusa Interpretation); 민족의식(the national consciousness); 문화의식(the cultural consciousness); 대립의식(the confronting consciousness)
- Citation
- 한국불교사연구, no.5, pp 35 - 76
- Pages
- 42
- Journal Title
- 한국불교사연구
- Number
- 5
- Start Page
- 35
- End Page
- 76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7773
- ISSN
- 2287-562X
- Abstract
- 이 논문은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 1890~1957)의 『삼국유사』 인식과 그의「삼국유사해제」에 대해 검토한 글이다. 최남선은 어린 시절부터 고전과서양문물을 접하였다. 그는 일본 유학 이전부터 단군에 대한 지식과 인식이 있었고, 일본 유학 이후에는 『삼국유사』를 재발견하여 단군을 복원하고 역사를 복원하였다. 최남선의 민족의식과 문화이식은 일련의 「단군론」 기술과 『삼국유사』에 대한 장문의 「해제」 서술로 이어졌다. 최남선의 「해제」는 그의 「단군론」과 『불함문화론』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논설이며, 이후 『삼국유사』 ‘해제’의 ‘전범’이자 ‘전형’이 되었다. 그는 『삼국유사』의 재발견을 통하여 단군을 복원하고 역사를 복원하여 불함문화권을확충하려 하였다.
최남선이 단군을 우리 역사의 구심으로 삼은 것은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그가 단군을 불함문화권의 원심으로 확산시킨 것은단군의 초점을 흐리게 한 근거이기도 하였다. 최남선은 우리의 많은 고전 중에서 특히 『삼국유사』에 집중하였다. 그것은 이 텍스트가 머금고 있는 민족의식과 문화의식 및 단군의 기록과 신화의 원천 때문이었다.
그는 이들 민족의식과 문화의식을 대립의식으로 제고시켰고, 단군의 기록과 각국의 신화를 일제에 맞서는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하였다. 최남선의 고대사에 관한 일련의 집필은 일제의 문화정치에 맞서는 전략이었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전략과 전술에 휘둘린 감이 없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근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구도가 제국주의의 길항구도 속으로 편입되자 친일로 기울어졌고 스스로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최남선의 역사 복원과 문화 민족의 열망은 『삼국유사』를 통해서 표출되었다. 그리고 여러 편의 「단군론」과 『불함문화론』의 입론을 통해 확장되었다. 그는 대립의식을 통해 문화민족을 자각하려 하였고 역사의식을 통해 신화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최남선의 민족의식이 수립될 수 있었던것은 『삼국유사』와 단군과 가야의 발견에 의해서였다. 이 발견을 계기로그가 쓴 『삼국유사』에 대한 장문의 「해제」는 이후 『삼국유사』 「해제」의한 ‘모범’이 되었다. 그 이후 『삼국유사』 번역자들은 저마다 육당의 「해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자들은 육당의 「해제」보다 더 길게쓰거나 또는 더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혹은 그 「해제」에 전거를 대면서 그에게 위임하려는 태도까지 생겨났다. 결국 번역자들은 『삼국유사』 의 전모를 한 눈으로 또렷하게 엿볼 수 있도록 「해제」를 작성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해제’ 간에 상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남선은 『삼국유사』에 대해 “조선 상대를 혼자 담당하는 문헌”이며 “조선의 생활과 문화의 근원(源頭)와 고형(古形)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이 책이 있을 따름이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 창고이다. 여기에는 민족 동질성의 인자인 언어 문자와 역사 문화로부터 철학 사상 및 예술 과학이 담겨 있다.
이처럼 최남선은 『삼국유사』가 민족공동체와 역사공동체의 근간이자 민족과 역사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정표이자 길잡이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삼국유사』의 핵심과 특장을 「해제」 속에 잘 정리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인식틀을 확보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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