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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봉녕사의 역사 검토와 화령전 원찰Historical Review on the Bongnyeongsa and the Memorial Temple in Hwaryeongjeon in the Premodern Era

Other Titles
Historical Review on the Bongnyeongsa and the Memorial Temple in Hwaryeongjeon in the Premodern Era
Authors
황인규
Issue Date
Dec-2013
Publisher
대각사상연구원
Keywords
Bongnyeongsa; Seongchangsa(orChangseongsa); Bongdeogsa; Hwaryeongjeon; King Jeongjo; 봉녕사; 봉덕사; 성창사; 창성사; 화령전; 화성; 정조
Citation
대각사상, no.20, pp 253 - 289
Pages
37
Indexed
KCI
Journal Title
대각사상
Number
20
Start Page
253
End Page
289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7745
ISSN
1229-1080
Abstract
본고는 수원 봉녕사의 전근대 역사를 검토한 것이다. 봉녕사의 전근대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로 간주할 만한 관련 기록이 거의 없다. 봉녕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성창사 혹은 창성사가 봉녕사의 전신인가 이다. 현존하고 있는 창성사 터와 현재 봉녕사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성창사는 이를 뒷받침해 줄만한 관련 기록이나 야사 및 설화조차 전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 후 조선초에 봉덕사로 불리다가 남양주 운악사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에 의해 세조의 능침사찰로 지정되면서 봉선사라고 하였던 같은 해인 1469년(예종 1) 세조의 삼화상인 혜각존자 신미가 중수하여 세조의 원찰로 삼았을 개연성이 없지 않다. 봉덕사는 鳳德山 奉德寺라고도 불렸으며, 대부분, 특히 조선시대의 ‘奉○寺’라는 사찰의 사례에서 보듯이 왕실과 관련이 깊은 사찰이었던 듯하다. 그 후 봉덕사가 역사의 전면에 크게 부각되는 것은 1800년대 초 순조대 이후이다. 즉, 봉녕사의 사중에 전하고 있는 상량문에 의하면, 순조가 아버지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어진을 봉안할 華靈殿을 짓고 그 원찰로 중창하고 ‘奉寧’라는 사액을 내림으로써 봉녕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화령전의 관리는 수원부 유수가 담당하게 하였는데 화령전의 원찰인 봉녕사도 관리 또는 후원하였을 것이다. 이는 수원유수였던 김병교가 봉녕사의 중수를 후원하였던 사실이나 화성을 감독하였던 박윤묵이 봉녕사 시를 남긴데서 알 수 있다. 순조가 자주 화령전에 제향을 올렸으므로 그 때 마다 원찰인 봉녕사에서도 역시 정조에 대한 추복불사가 있었을 것이다. 그 후 봉녕사의 탱화의 화기에서 볼 수 있듯이 봉녕사는 고종과 민비, 그의 아들 순조를 추복하는 등 왕실원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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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Education > Department of History Education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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