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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名物學의 전개와 성격A Study on the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of Myeongmulhak in the Late 18th and the Early 19th Centuries

Other Titles
A Study on the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of Myeongmulhak in the Late 18th and the Early 19th Centuries
Authors
노대환
Issue Date
Oct-2013
Publisher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Keywords
명물학; 명물고증학; 정조; 이덕무; 이옥; 정약용; 홍석주; Myeongmulhak; Myeongmulgojeunghak; King Jeongjo; Lee Deokmu; Lee Ok; Jeong Yakyong; Hong Seokju
Citation
한국학연구, no.31, pp 541 - 572
Pages
32
Indexed
KCI
Journal Title
한국학연구
Number
31
Start Page
541
End Page
572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7719
ISSN
1225-469X
Abstract
명물학의 유행은 조선 후기 문화계의 특기할 만한 현상의 하나이다. 명물학은 명물도수학 혹은 명물고증학 등으로 불리며 18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간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외부 사물의 정보를 수집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취합한 정보를 정리한 저술이 나타났다. 명물학 자체가 反성리학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명물학은 성리학적인 토대를 흔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명물학의 그러한 위험성을 간파하였던 정조는 학술 정책을 통해 명물학의 성격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세도가들이 경세와는 거리가 먼 명물고증학에 심취한 가운데 일부 지식인들은 정조의 정책을 계승하여 명물고증학의 확산에 대응하였다. 명물학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과 그것을 견제하려는 시도가 교차하면서 명물학은 전개되었다. 명물학의 유행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와 관련한 연구는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물학은 조선 후기의 사상사 내지 문화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검토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18~19세기에 명물학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이 조선 후기 사상사 내지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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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 Department of History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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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h, Dae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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