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 ‘季路問事鬼神’章에 관한 연구A Critical Analysis and Commentary on the Chapter of ‘Jih-Lu Asked about Serving Spiritual Beings’ in the Analets
- Other Titles
- A Critical Analysis and Commentary on the Chapter of ‘Jih-Lu Asked about Serving Spiritual Beings’ in the Analets
- Authors
- 유흔우
- Issue Date
- Nov-2016
- Publisher
- 한국공자학회
- Keywords
- Analects; Confucius; Jih-lu; celestial and earthly spirits; life; death; life-and-death views; physicalism; well-being; well-dying; well-ending; 『論語』; 孔子; 季路(子路); 鬼神; 生; 死; 生死觀; 물리주의; 善生; 善死; 善終
- Citation
- 孔子學, no.31, pp 213 - 259
- Pages
- 47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孔子學
- Number
- 31
- Start Page
- 213
- End Page
- 259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6451
- ISSN
- 1738-2629
2713-766X
- Abstract
- 이 논문은 『論語』 「先進」 ‘季路問事鬼神’章(「11‧12」)에 대한 역대 주석서들의 분석을 통하여 孔子의 자각적인 생사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11‧12」는 季路(子路)가 鬼神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孔子가 “사람을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未能事人, 焉能事鬼?)라고 反問하고, 또 계로가 죽음(死)에 대해 묻자 “삶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反問한 것이다. 孔子의 이러한 변명(apology)은 이후 孔子 및 儒家가 鬼神存在와 死後를 회의하거나 부정하기 때문에 生을 주로 담론하고 死에 대해서는 보류하고 논하지 않는다(存而不論)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논어』에서 공자는 生보다 死를 두 배나 더 말하고 있다.
공자가 귀신의 존재를 긍정했다는 주장은 공자가 사후 세계를 존재론적으로 인정했다는 말이다. 사후 세계를 인정하는 경우 죽음은 삶의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과정이나 단계에 불과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孔子가 子路에게 反問으로 대답한 眞意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귀신존재 문제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회의론·불가지론·부정론·긍정론 등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공자는 괴이함과 용력과 반란과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7‧21」)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귀신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았다는 말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회의론이나 불가지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王夫之는 기존의 주석가들이 모두 生死 개념을 잘못 파악하였다고 말하면서, ‘生’은 ‘죽기 이전을 통 털어 말하는 것’(未死以前統謂之生)이고, ‘死’는 ‘삶의 끝’(生之終)이라고 한다. 趙佑는 자로가 ‘죽음에 처하는 마땅함’(處死之當)에 대해 물은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王夫之와 趙佑의 生死 해석이 孔子의 진의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孔子 및 儒家에서 ‘죽음’은 삶의 영원한 정지를 의미한다. 孔子가 子路에게 반문한 것은 인생에서 ‘끝(終)’이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는 공자가 죽음을 사실 차원의 문제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의미 차원에서 사색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가변성,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편재성 등등은 죽음의 內包性이다. 이러한 죽음의 내포로 인해 불안과 공포, 그리고 허무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지만 儒家는 인생에 ‘끝’이 있다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면 오히려 인생에 대한 강렬한 使命과 노력의 충실성을 적극적으로 촉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孔子의 自覺的 生死觀에서 촉발된 것이다. 유가는 이로부터 ‘죽음’을 ‘편안함(安)’ 또는 ‘休息’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죽음관은 죽음이 ‘끝’, 즉 육체와 정신 모두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는 물리주의의 죽음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죽음관은 善生(well-being)을 통해서 善死(well-dying)를 확보하고, 善死는 또 다른 新生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바로 善終(well-ending)을 의미한다는 생사관이라 할 수 있고,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그렇다고 동의할 수 있는 合意的인 관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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