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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고승의 비석 건립과 문집 간행Zhu-Xi(朱熹) and Won-Hyo(元曉)

Other Titles
Zhu-Xi(朱熹) and Won-Hyo(元曉)
Authors
고영섭
Issue Date
Feb-2015
Publisher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Keywords
Hua-Yi distinction(華夷論); social status(分); proclamation(宣言); reticence(絶言); Non-verbal communication(離言); Avoid extremes and Do not stay in the middle(離邊非中); 국가불교; 자생불교; 침류대 학사; 도통론; 나옹법통설; 태고법통설
Citation
한국불교사연구, no.6, pp 101 - 214
Pages
114
Journal Title
한국불교사연구
Number
6
Start Page
101
End Page
214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6052
ISSN
2287-562X
Abstract
이 논문은 조선후기 고승의 비문 건립과 문집 간행을 통해 불교와 유교가 어떻게 소통했는지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조선전기 불교사는 고려이래의 국가불교적 여운이 남아있었다. 반면 조선후기 불교사는 자생불교적 기운에 입각하여 보다 역동적이었다. 임란과 호란 이후 불자들은유자들과 긴밀하게 교유하면서 불교 선법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행장을 찬술하고 비석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그들은 17세기에 고승의 비문 건립을 위해 당시 명망있는 유자들에게 비문 찬술을 부탁함으로써 유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빌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수립하려고하였다. 불자들은 선법의 법통을 수립하고 임란과 호란에 참여한 승장(僧 將)들의 전공(戰功)을 기렸다. 그리하여 유자들이 찬술한 고승의 비문으로비석을 건립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장해 나갔다. 당시 고승 비석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세속권력의 질서 속에 참여하기위한 매개체였다. 그것은 조선 사회 내에서 불교 집단의 정당성을 증대시키는 기제이기도 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유자들은 처음에는 불자들의 비명 작성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유자들은 불자들의 지속적인 요청과 해당 승장들과의 친분관계를 끊을 수 없어 고승 비문 찬술에 동참하기시작하였다. 이들의 동참에 힘입어 불자들도 비문 찬술에 점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과정에서 불교계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의 인식틀을 확보하면서 불교의 구심력을 회복해 갔다. 고승 비문을 쓴 유자들은 당시의 불교계와 소통하던 이들이었다. 이들은서울과 서울근교에 거주하며 서울 한가운데 있는 침류대(枕流臺)를 중심으로 활동한 학사(學士)들이었다. 이들 일군의 문장가와 유학자들은 전통유학에 대한 회의 속에서 당시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부응하기위해 사회 개선을 추구하고 다양한 사상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소위 이단적인 사상에 대해 엄격한 자세를 취하는 대신 다양한 사상을인정하며 관심을 갖는 등 새로운 경향을 보였다. 당시 유자들은 도통론에 입각하여 계보를 확립하고 족보를 수립하면서 문집 간행에 집중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불교계도 유자들에게 비문 찬술을 의뢰하고 불자들의비석 건립을 추진하였으며 고승들의 문집들을 간행하고 유통시켰다. 임란 호란 이후 각 사찰의 자생적 경제력은 고승들의 문집 간행을 뒷받침했다. 동시에 청허의 문도들은 유자들의 권위를 빌어 스승의 비문을 찬술하면서 법통의 문제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명-목우-나옹법통설이 제시되었고 이를 반박하는 임제-태고법통설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청허계 문도들이 임진왜란에서 세운 전공과 병자호란에서 청허 방계인 부휴계 문도들이 세운 전공에 힘입어 임제법통이 확립되었고선법의 정체성이 수립될 수 있었다. 청허계 4대 문파의 후손들과 부휴계 7대 문파 문도들이 고승의 문집을간행하면서 이후 선문을 주도해 갔다. 유교 지식인들은 불교 지식인들과‘시’와 ‘문’과 ‘차’ 등의 교유를 통해 불교적 상상력과 인문적 깊이를 확장하였고, 불교 지식인들은 유교 지식인들과의 교유를 통해 현실에 대한이해와 경세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불교와 유교 즉 불자와 유자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정체성이 분명해져 갔고 인식틀이 또렷하게정립되어 갔다. 그리하여 고승의 비문 찬술과 문집 간행은 불자들과 유자들의 교류를 깊게 하였고 상호 이해를 넓게 하였다. 그 결과 불교는유교와 함께 조선후기 사상사에서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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