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의 극복을 위한 원효의 화엄학적 조망Prospect of Hwaeom School of Wonhyo to Overcome the Division Age
- Other Titles
- Prospect of Hwaeom School of Wonhyo to Overcome the Division Age
- Authors
- 고영섭
- Issue Date
- Dec-2014
- Publisher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Keywords
- One mind(一心); The true and false minds(眞妄和合心); True mind(眞心); mind that arising from the primal nature of Tathagata(如來性起心); existence ego(有我); no ego(無我); The greater self(大我); unobstacle and unhindered(無障無礙); 일심; 진망화합심; 진심; 여래성기심; 유아; 무아; 대아; 무장무애
- Citation
- 동아시아불교문화, no.20, pp 29 - 58
- Pages
- 30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동아시아불교문화
- Number
- 20
- Start Page
- 29
- End Page
- 58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5980
- ISSN
- 2714-0938
2714-0946
- Abstract
- 이 논문은 불교적 인간의 삶의 전형을 통해 분단시대의 극복을 모색한 글이다. 분단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교적 인간의 발심하는 존재로서의 ‘행원’(行願)과 서원하는 존재로서의 ‘회향’(廻向) 즉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발보리심’(發菩提心)과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승리해 얻은 깨달음을 회향하기를 서원하는 보살행[四弘誓願]과 같은 수행의 질적 전환과 인식의 질적 도약이 요청된다. 분황 원효는 진심(眞心)인 여래성기심 즉 화엄 일심을 통해 봉황이 푸른 창공을 차고 올라 자신이 살던 산악의 낮음을 내려다 보고, 하백이 큰 바다에 이르러 자신이 놀던 냇물의 좁음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자기 체제를 고수하는 ‘과거형’의 작은 나와 자기 체제를 해체하는 ‘현재(미래)형’의 큰 나와 더 큰 나를 대비하여 묘사해 주고 있다.
우리가 과거형의 분단을 벗어나 현재(미래)형의 통일과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행의 질적 전환을 통한 인식의 질적 승화가 요청된다. 존재의 드러난 부분과 존재의 감춰진 부분을 온전히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남북 분단으로 드러난 부분(피해)과 남북 통합으로 감춰진 부분(손익)을 온전히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일상에서 존재의 모든 양상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무한성’의 영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한성의 영역은 경계와 장애를 넘어 화엄의 무장무애의 지평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즉 계(界) → 애(礙) → 무장무애(無障無礙)로 나아가듯이 작은 나[有我] → 큰 나[無我] → 더 큰 나[大我]로 나아가고, 유식의 일심 → 여래장의 진망화합심 → 화엄 일심으로 나아가면서 비로소 ‘남북 통일’ 즉 ‘통합 한국’의 무한성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무한성은 분황 원효의 화엄 일심 즉 대승(일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 위에서 살아가는 불교적 인간 혹은 보살적 인간 또는 이타적 존재의 삶을 통해 자기 체제를 고수하는 ‘작은 나’[有我]와 자기 체제를 해체하는 ‘큰 나’[無我]를 넘어 ‘더 큰 나’[大我]의 대긍정의 영역에서 현현한다. 그것은 유식의 일심과 여래장의 진망화합심을 넘어선 화엄 일심인 진심(眞心) 즉 여래성기심의 출현과도 같다. 그러므로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작은 나의 ‘계’[界]와 큰 나의 ‘애’[礙]를 넘어 더 큰 나의 ‘무장무애’[無障無礙]로 나아가야 하며, 유식의 일심과 여래장의 진망화합심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화엄 일심의 통합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화엄의 ‘문 없는 문’[普門]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래의 배움이 잗달았음[齷齪]을 알게 되듯이 통일시대 이후에 분단시대에 살았던 우리들의 인식이 잗달았음을 알게 될 날은 언제쯤일까. ‘분별의 지식’을 넘어 ‘통섭의 지혜’로 나아가 남북 분단과 동서 분열을 극복하게 되면 지금의 고착이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왜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살았는지를 상기할 때가 되면 우리는 이미 수행의 질적 전환을 통한 인식의 질적 승화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화엄 일심으로 분단시대의 분열과 소원을 극복하고 통일시대의 통합과 소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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