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代 遼西 平盧軍의 南下와 田神功의 活動The Southward Movement of the Tang Pinglu Army and the Activities of Tian Shengong
- Other Titles
- The Southward Movement of the Tang Pinglu Army and the Activities of Tian Shengong
- Authors
- 정병준
- Issue Date
- Dec-2013
- Publisher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Keywords
- 平盧軍; 田神功; 李忠臣; 史思明; 劉展; 河南(汴宋)節度使; 평로군; 전신공; 이충신; 사사명; 유전; 하남(변송)절도사
- Citation
- 인문학연구, v.46, no.4, pp 361 - 394
- Pages
- 34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인문학연구
- Volume
- 46
- Number
- 4
- Start Page
- 361
- End Page
- 394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5679
- ISSN
- 1229-9340
2799-4384
- Abstract
- 현종 천보 14재(755) 11월 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다음 해 遼西 평로군은 안록산을 이반하여 당조에 귀순하였는데, 이때 전신공도 거사에 참여하였다. 757년 정월 董秦․田神功은 보병 3천을 이끌고 河北으로 남하하여 德州․棣州 등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하북이 다시 반란군(사사명) 수중에 떨어지면서 두 사람은 河南으로 남하하였다. 같은 해 10월 당군은 하남의 낙양을 수복하였다.
759년 3월 동진․전신공과 9절도사 연합군이 相州에서 사사명에게 대패하였다. 또 9월 汴州가 사사명에게 함락될 때 두 사람은 포로가 되었다. 그러자 사사명이 전신공에게 江淮 지역을 공략하게 하였지만, 전신공은 남하 도중 宋州에서 다시 당으로 투항하였다 이후 전신공은 동진과 분리되어 따로 활동하였다.
760년 11월 강회에서 劉展이 반란을 일으키자 다음 달 전신공은 淮南東道節度使 鄧景山의 요청으로 강회로 남하하여 761년 정월 반란을 평정하였다. 그 공로로 같은 해 6월 전신공은 徐州刺史에 임명되었다가 762년 정월 淄靑節度使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때마침 侯希逸이 이끄는 요서 평로군 본대가 그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같은 해 5월 전신공은 兗鄆節度使로 옮겼다. 이어 당군이 史朝義 토벌전을 펼칠 때 전신공은 선봉에서 큰 공을 세웠다.
763년 9월 토번이 장안을 침공하자 대종이 陝州로 피신하였는데, 때마침 전신공이 입조하였다가 대종을 극진히 호종하였다. 요서에서 함께 남하하였던 邢君牙․陽惠元 등은 이때 전신공과 분리되어 神策軍에 예속되었다.
764년 전신공은 河南節度使에 임명되어 汴․宋 등 8주를 관할하였다. 이후에도 전신공은 여러 차례 입조하여 충절을 보였고 또 공손함으로 칭송을 받았다. 동진(즉 李忠臣)은 淮西節度使가 된 후 충성심과 약탈성을 동시에 보이면서 회서 번진이 할거 세력으로 나아가는 연결점의 역할을 하였던 데 비해, 전신공은 ‘변송’ 지역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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