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WEB OF SCIENCE
0SCOPUS
0초록
고려 후기의 총신(寵臣) 염승익은 다라니로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나라의 재상에까지 올랐다. 이는 그만큼 고려인들이 다라니에 의지했음을 알려준다. 물론 다라니를 외워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마음은 이미 신라부터 있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보다 간결하면서도 훨씬 더 효과가 있다고 믿은 보협인다라니(寶篋印陀羅尼, Precious Casket Seal Dhāraṇī)을 선호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그 마음을 잘 읽어낸 염승익이 1276년에 보협인다라니와 밀교의 만다라를 하나의 원 안에 넣어 새로운 도상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고 추정했다. 16년이 지난 후인 1292년에는 보협인다라니에 각종 진언spell을 추가하고, 또 가장자리에 제작자, 제작 장소, 제작 시기 등을 적어 넣어 또 다른 <다라니·만다라>를 제작했다. 치병에 효력이 있는 『보협인경』 다라니에 강력한 힘을 지닌 각종 진언을 덧붙이고, 중앙에는 생명의 탄생이자 근원을 상징하는 37존과 8엽을 만다라 형식으로 배치한 것이다. 염승익은 핵심만을 뽑아 하나의 원 안에 압축해 넣은 <다라니·만다라>를 대량으로 생산해 유포했다. 1276년 본과 1292년 본은 이후에도 불상에 함께 납입되었지만,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1292년 본만 남아 1466년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이하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발견된 실크 저고리에도 찍혔다. 1466년 왕실에서 제작한 <상원사 문수동자상>에까지 1292년 <다라니·만다라>가 쓰인 것을 보면 그의 명성은 조선시대까지도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염승익이 1292년에 제작한 <다라니·만다라>는 이것을 몸에 지니고 외기만 해도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문을 외워 주술을 부리는 늙은이’라 불렸던 염승익이 이 <다라니·만다라>를 제작했고, 큰 경제적 부담없이 이 <다라니·만다라>를 지니기만 해도 병을 낫게 해주는 주술의 도구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다라니·만다라>를 몸에 지니기도 했겠지만, 불상의 복장으로 납입하여 불보살상에 다라니의 신통력이 더해지도록 했을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고려 후기 염승익(廉承益)의 <보협인다라니·만다라> 제작과 주술 치유
- 제목 (타언어)
- Yŏm Sŭngik(廉承益) and Healing through the Conception of the Baoqieyin Dhāranī-Mandala Image in the Late Goryeo Dynasty
- 저자
- 임영애
- 발행일
- 2024-12
- 유형
- Article
- 저널명
- 의사학
- 권
- 33
- 호
- 3
- 페이지
- 563 ~ 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