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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고구려-낙랑군 관계와 접경 공간
초록
본 논문은 1~3세기에 걸쳐 전개된 고구려와 낙랑군의 관계를 양자의 접경 지역 변화라는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1세기 낙랑군의 정치적 동요와 행정 재편 과정속에서 고구려·낙랑군·낙랑국의 관계를 살펴보는 한편, 2~3세기 고구려의 남하와 이에따른 낙랑군 권역의 축소·재편 과정을 단계적으로 분석하였다. 建武 6년(30) 王調의 난 진압 이후 후한의 행정 축소 정책으로 동부도위가 폐지되고領東 7縣이 侯國으로 재편되면서, 동부 변경 지역에 대한 낙랑군의 지배 방식은 근본적인 전환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고구려는 한반도 동북부로의 진출 기회를확보하였으며, 삼국사기에 전하는 호동 설화는 고구려에 복속한 領東 7縣 토착 세력의동향을 반영한 기록으로 이해된다. 설화에 등장하는 ‘樂浪國’과 ‘樂浪王 崔理’는 侯國化 된 領東 지역 토착 집단과 그 수장이 고구려 측에 ‘國’과 ‘王’으로 인식·기억된 결과일가능성이 크다. 또한 蠶支落을 蠶台縣과 연결할 경우, 1세기 전반 고구려의 領東 지역진출은 태조왕대의 옥저 정복 이전부터 복속과 이탈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접경 경험위에서 전개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후한서 군국지와 진서 지리지의 비교를 통해 보면, 낙랑군은 2세기 중엽까지 청천강 일대 속현을 유지하다가 3세기 초에 이르러 대동강 이남으로 영역이 크게축소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곧바로 고구려의 직접 점령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과 낙랑군의 행정적 후퇴가 결합된 결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3세기 중엽까지 領東 지역에 대한 낙랑·대방의 군사적 개입이 지속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대동강 이북 지역은 일정 기간 공백 혹은 완충지대로 존속하였을가능성이 크다. 결국 2세기 후반~3세기 전반의 고구려–낙랑군 관계는 압박과 후퇴, 재편의 과정이누적되며 접경 공간 자체가 유동적으로 재구성되는 양상으로 이해된다. 이는 고구려와낙랑군의 경계를 단선적 영토 귀속의 결과가 아니라, 상호 경쟁과 조정 속에서 형성된접경 공간의 역사로 파악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키워드
- 제목
- 1~3세기 고구려-낙랑군 관계와 접경 공간
- 제목 (타언어)
- The Relationship between Goguryeo and the Lelang Commandery and Border Space, 1st–3rd Centuries CE
- 저자
- 이승호
- 발행일
- 2026-03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고대사연구
- 호
- 121
- 페이지
- 49 ~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