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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 한자문화의 변용 — 吏讀의 誕生과 관련하여 —
초록
이두 표기의 기본적 원리는 고유명사 표기에서 비롯되어, 단계적 진화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체계화되고 발전해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론적 방식으로 이두의 발생과정을 설명하면 한자와 이두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吏讀의 발생과 起源處는 항상 한자·한문의 수용이 빨랐던 고구려나 백제가 될 수밖에 없고, 또한 후발 신라는 이들 양국의 표기법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기존의 금석문 자료와 함께 새롭게 발굴된 목간자료를 분석하여 이두의 고구려기원설, 백제기원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이두 표기의 최종 완성자로 신라를 새롭게 주목해보았다. 고구려와 백제의 한자수용이 신라보다 적어도 一世紀 이상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후발 신라가 그들과 공존하던 시기에, 그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방식의 이두 표기법을 發想하고, 이를 구체화시킨 역사적, 구조적 맥락을 짚어볼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인명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명사에 대한 音讀 차자표기가 한자문화 수용 초기부터 확인된다. 양국에서는 文末에 ‘之’ 등의 허사를 의도적으로 기록하거나, 한문 문장의 釋讀을 위해 띄워 쓰기를 하는 句讀表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도 백제에서도 일반적으로 한문에 기초한 문자생활이 영위되었고, 차자표기 발달에 커다란 진전이 확인되지 않는다. 고구려와 백제 공히 中을 처격조사로 사용한 점이나 耳, 也, 之 등의 虛辭를 文章의 종결사로 사용하는 용례들이 확인되지만, 이를 조사나 終結語尾를 표현한 이두 표기로 확정하는 것은 아직도 자료적으로 부족하다. 이러한 中과 허사는 한문에도 처격과 종결사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허사를 종결어미로 확정하기 위해서는 종결어미(어말어미)의 존재보다는 ‘先語末語尾’의 표기가 명확히 나타나는지 여부가 중요하며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한편 신라에서는 6세기 중반 자료인 「丹陽赤城碑」(550년 이전)의 ‘大人耶小人耶’(大人이나 小人이나)에 열거형 助詞가 확인되며, 「戊戌塢作碑」(578년)의 ‘此成在□人’(이를 만들었던 □사람)에 과거시제의 ‘在(-겨)’와 같은 ‘先語末語尾’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 통일 이전 7세기 후반의 「월성해자 2호목간」에는 존칭형 어미인 ‘賜’까지 보인다. 이처럼 신라의 문자자료에서는 6세기 중반 이후 膠着語인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해보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당대의 자료로 확인된다. 백제의 논어목간에는 한문의 석독을 위해 띄워 쓰기한 구두표기의 빈칸들이 확인되는데, 이는 신라의 금석문이나 목간 자료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의도적인 빈칸은 한국의 고대인들이 한문과의 언어적 장벽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었던 위대한 발명이었다. 특히 신라인들은 한문 사이사이의 ‘빈칸’ 속에서 단순한 句讀가 아닌 助辭나 語尾 등 교착어로의 전환을 구현하는 이두 표기를 개발하였다. 이로 인해 이두에서 語幹 부분은 訓讀(釋讀)하고, 語尾 부분은 音讀하는 ‘訓主音從’의 표기체계나, 경전을 해석하기 위해 한문 사이사이에 吐를 다는 口訣이 발명되었다고 생각된다. 고구려나 백제가 일찍이 발달된 낙랑군의 한자문화를 전범으로 하여 문서행정이 수용되고 早熟하였던 것에 비해, 신라는 오랫동안 구두명령에 입각한 국가행정시스템이 관행화되어 있었고, 이는 신라에 문서행정이 수용된 이후에도 그 내용성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문서의 어휘에서, 내용의 서술에서 구두명령, 즉 구어체를 재현하는 속한문(변격한문)의 형식이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더 발달해갔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두 표기의 문서작성 방식이 한자 이해 능력이 진전된 후대 고려와 조선에도 지속되고 일반화되었다는 점에서, 신라가 한자·한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이두를 발명하였다거나, 중국문화 수용의 초기적 현상으로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는 문서 발신자의 의사가 수신자에게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려는, 문서행정의 본질을 지향한 것이었다. 결국 신라인들은 자신들이 이미 口頭의 세계에서 달성한 의사소통의 수준을 文書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을 담지하려고 노력하였고, 그것이 바로 이두 탄생의 신라적 조건으로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키워드
- 제목
- 한국 고대 한자문화의 변용 — 吏讀의 誕生과 관련하여 —
- 제목 (타언어)
- Creation of Idu, a Writing System that Represented the Ancient Korean Language by Borrowing Chinese Characters
- 저자
- 윤선태
- 발행일
- 2026-04
- 유형
- Y
- 저널명
- 동서인문
- 호
- 30
- 페이지
- 75 ~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