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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 Skt. Mahāpratisarā-dhāraṇī)> 필사본 두 장이 세상에 드러났다. <금동방형경합>안에 납입되어 있었다. 고려시대 <수구즉득다라니>는 많이 남아있지만, 신라로 추정되는 예는 처음이다. 두 장의 다라니 가운데 한 장은 범자(梵字, Skt. Siddhamātṛkā)로, 다른 한 장은 한자로 썼다. 두 장 모두 재료가 닥종이로 밝혀졌기 때문에 신라에서 만든 것은 틀림없겠지만, 아쉽게도 언제 제작되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없다. 이 글은 범자 다라니 중앙에 그려진 금강신, 그리고 <금동방형경합>의 특징을 살펴 국립경주박물관의 <수구즉득다라니>가 9세기 후반 혹은 그 이후 언젠가 제작되었음을 밝힌 글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립경주박물관의 <수구즉득다라니> 중앙에 그려진 금강역사상과 금강저, 금동경합의 뚜껑 식물 문양과 네 면에 새겨진 신장상의 특징을 고려한 것이다. 둘째, 다라니를 법식에 맞게 경합에 넣어 보관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706년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8세기 전반 <나원리 오층석탑>, 8세기 중엽 <불국사 삼층석탑> 등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지만, 모두 별도의 경합에 넣지 않은 채로 사리외함에 넣었다. 반면, 대략 9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탑 안에 경전을 넣기 위한 금동방형합이 마련된다. 모두 방형이며, 사리기와는 별도로 납입되었다. 셋째, 문자 자료에 등장하는 『수구다라니』를 비롯한 다라니의 유행시기를 고려한 것이다. 『삼국유사』 속 보천의 이야기, <해인사 묘길상탑지>를 고려하면 『수구다라니』의 유행은 신라말 혹은 그 이후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8세기 신라에 <수구다라니>가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라에서 『수구다라니경』의 본격적인 유행 시기는 9세기 후반 이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신라 <수구즉득다라니>의 金剛神像, 그리고 <금동방형경합>
- 제목 (타언어)
- The Vajra Deity Image from the Incantation of Wish-Fulfillment (Mahāpratisarā-dhāraṇī) and the Gilt-bronze Box of Silla
- 저자
- 임영애
- 발행일
- 2024-12
- 저널명
- 신라문화
- 권
- 65
- 페이지
- 141 ~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