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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295년 <대둔사 건칠아미타상>에서 발견된 <보협진언·팔엽삼십칠존만다라> 2종에 관한 것이다. 2종의 다라니 가운데 ①은 13세기 후반에 간행되었고, ②는 정확히 1292년에 간행됐다. ①과 ②가 함께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①과 ②<보협진언·팔엽삼십칠존만다라>는 『보협인경』의 핵심인 마지막 진언 부분을 발췌하고, 거기에 몇몇 진언을 추가했으며, 원의 중심에는 금강계·태장의 <팔엽삼십칠존만다라>를 두어 간결한 한 장의 다라니로 제작했다. 이 한 장의 다라니만으로 휴대가 간편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고자 한 것이다. 필자는 이 2종의 <보협진언·팔엽삼십칠존만다라> 제작을 주도한 이가 고려후기 충렬왕의 폐행인 염승익(廉承益, ?-1302)이라고 추정했다. 경전과 불상을 조성하고 수리하는 일을 담당했던 경상수보도감(經像修補都監)의 일원이면서 주술에 능했던 염승익이 아이디어를 내 ①을 만든 후, 이어서 그의 지위가 정2품까지 올랐던 1292년에 ①에 간기를 추가하여 ②를 제작했다고 본 것이다. ①과 ②는 형식과 구성이 같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같으며, 무엇보다 글씨체가 같고, 글자의 머리가 모두 바깥을 향한 형식도 같다. 필자는 이처럼 주술에 뛰어났던 염승익이 보협진언과 팔엽삼십칠존만다라를 하나로 합해 간결하면서도 효능은 높은 <보협진언·팔엽삼십칠존만다라> 제작에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보협진언>을 독송함으로써 현세의 모든 재앙이 소멸될 것이라는 믿음은 고려후기에 시작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이어져 불상의 복장에 빠짐없이 납입되었으며, <대둔사 건칠아미타상>의 <보협진언·팔엽삼십칠존만다라> 2종은 그 유행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키워드
- 제목
- <구미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복장 <보협진언·팔엽삼십칠존만다라>의 제작주체와 조성의도
- 제목 (타언어)
- The Patronage and Intent behind the Production of the ‘Bhautrkā Dhāraṇī Sūtra and Eight-petaled Lotus Maṇḍala of Thirty-seven Deities’ Enshrined in the Dry-Lacquer Seated Amitābha Image of Kumi Taedun-sa
- 저자
- 임영애
- 발행일
- 2025-12
- 유형
- Y
- 저널명
- 동국사학
- 호
- 84
- 페이지
- 57 ~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