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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 시기 부여와 부여사 인식
초록
이 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배층·지식인들의 역사 인식 속에서 부여의 역사가 어떻게 기억되고, 재구성되었는지 검토한 것이다. 먼저, 고려시대 부여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고구려 계승 의식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형성되었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 오면, 부여의 역사는 단군조선과 연결되며 고려인의 전사(前史) 체계 속에 적극적으로 편입된다. 나아가 고려 전·중기에 운용된 봉작제와 궁원제에서 ‘부여(扶餘)’라는 명칭이 활용되었다는 점은, 부여가 단순한 신화적 기원이 아니라 고려 왕조의 국가적 연원과 결부된 역사적상징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부여에 대한 역사 인식은 뚜렷한 단절을 맞이한다. 부여는 기자-마한-신라로 이어지는 정통 계보에서 배제되며 공적 역사서술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조선 전기 관찬 사서에서 부여에 대한 언급이 극히제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인식 구조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국난을 거치며 조선 지식인 사회에서 북방사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부여의 역사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조정(趙挺)의 『동사보유(東史補遺)』를 시작으로 북부여·동부여가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되고,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와 허목(許穆)의 『동사(東事)』에 이르면 부여는 독립된 역사 주체로서 체계적으로 서술되었다. 이후18세기에는 이종휘(李鍾徽)의 『동사(東史)』와 한치윤(韓致奫)·한진서(韓鎭書) 의 『해동역사(海東繹史)·지리고(地理考)』를 중심으로 중국 정사와 각종 문헌에대한 치밀한 고증을 통해 부여의 역사와 강역이 적극적으로 탐색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곧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성립을 준비하는 지적 토양이 되었으며, 신채호의 ‘부여주족론’으로 이어진다.
키워드
- 제목
- 고려·조선 시기 부여와 부여사 인식
- 제목 (타언어)
- Perceptions of Buyeo and Its History in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 저자
- 이승호
- 발행일
- 2026-03
- 유형
- Y
- 저널명
- 동북아역사논총
- 호
- 91
- 페이지
- 147 ~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