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王의 亂’ 이후 平盧節度使 李納의 兩面性Two Sides of the Pinglu Military CommissionerLi Na After the Jianzhong Incident
- Other Titles
- Two Sides of the Pinglu Military CommissionerLi Na After the Jianzhong Incident
- Authors
- 정병준
- Issue Date
- Aug-2020
- Publisher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Keywords
- Tang Dezong; Jianzhong Incident; Pinglu Army; Li Na; Li Xilie; 당 덕종; 사왕의 난; 평로군; 이납; 이희열
- Citation
- 한국고대사탐구, no.35, pp 489 - 524
- Pages
- 36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국고대사탐구
- Number
- 35
- Start Page
- 489
- End Page
- 524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6346
- DOI
- 10.35160/sjekh.2020.08.35.489
- ISSN
- 2092-5727
- Abstract
- 唐 德宗의 번진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난 四王二帝의 난은 貞元 2년(786) 4월 종결되었다. 이후 덕종은 정원 21년(805) 정월까지 약 19년 동안 더 재위하였지만, 이 기간에 그는 번진들에 대해 더 이상 강경책을 펼치지 못한 반면 번진들은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2제의 난 이후 덕종의 번진정책은 전통적으로 ‘姑息’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즉 목전의 평안을 위해 “잠시 내버려두는” 정책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근래에 들어 ‘할거 번진’ 이외의 다른 번진들에 대해서는 덕종이 여러 가지 억제 정책을 추진하여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견해도 제시되어 있다.
이납은 하북3진과 함께 4왕의 난을 일으켜 당조를 굴복시킨 후 당조와의 공존을 지향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실제의 행동을 보면 간단히 단정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이납은 덕종이 회유하기 위해 내린 은택을 모두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반역적 태도를 거두지 않았다. 이 글은 4왕의 난 이후 이납이 취한 태도에 대한 검토를 통해 그 시기 번진체제를 형성한 구조적 성격을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이납의 행동은 당시 번진체제에 내재된 다중적 모순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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