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과 안식의 공간으로서 산사(山寺)Mountain Temples as Places of Resistance and Rest
- Other Titles
- Mountain Temples as Places of Resistance and Rest
- Authors
- 김일환
- Issue Date
- Oct-2025
- Publisher
- 동악어문학회
- Keywords
- 남한산성; 실기(實記); 승려; 사찰; 산사(山寺); Namhansanseong; Silgi (實記); monks; temples; mountain temples
- Citation
- 동악어문학, no.97, pp 11 - 37
- Pages
- 27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동악어문학
- Number
- 97
- Start Page
- 11
- End Page
- 37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62090
- DOI
- 10.25150/dongak.2025..97.001
- ISSN
- 1229-4306
- Abstract
- 병자호란 시기 남한산성에 있던 사찰은 단순한 피난처나 종교 공간을 넘어, 정치적 위기 속에서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개원사는 원종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을 주관한 의례 공간이자, 농성전을 수행하는 문관과 무관들의 숙소이면서, 동시에 충성과 불만, 신앙과 권력이 교차하는 긴장의 장(場)이었다. 하위 관료 남급은 개원사에서 조선 관료들의 위선과 응축된 문․무 갈등을 관찰하였으며, 반면 이경석 등 고위 관료들의 후일담은 그 시기를 충의와 우정의 서사로 미화하였다. 이러한 대비는 사찰이 단순한 신앙의 공간이 아니라 조선 사회의 정치적·심리적 위기를 응축한 무대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남한산성에 들어가지 못한 조경은 관악산․수리산․청계산 일대 산사들의 항전과 구호 활동을 생생히 기록하였다. 그는 승려들이 활을 쏘며 싸우는 전사이자 피란민을 보호하고 식량을 마련하는 구호자로서 자비와 의리를 동시에 실천했다고 전한다. 불성사, 청계사, 수월암 등 산사들은 서로 연계된 항전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공동체의 생존 기반을 유지하였다. 조경은 이러한 산승들을 ‘의인’으로 호명하며 불교를 전란의 윤리적 주체로 복권시켰다. 이는 조선 후기 불교의 현실 참여와 사회적 위상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로 해석된다. 병자호란 관련 실기에 보이는 사찰은 신성성과 세속성, 종교성과 정치성이 교차한 복합적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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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ears in
Collections - College of Humanities > Division of Korean Language, Literature, and Creative Writing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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