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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王宮과 國家寺刹 - 그 분포와 도로 체계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Royal Palace and the Road in front of the National Buddhist Temple

Other Titles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Royal Palace and the Road in front of the National Buddhist Temple
Authors
윤선태
Issue Date
Dec-2020
Publisher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Keywords
月城; 皇龍寺; 興輪寺; 靈廟寺; 四天王寺; 前大路; the Wolseong royal palace; Heungryunsa; Hwangnyongsa; Yeongmyosa; Sacheonwangsa; the roads in front of national buddhist temples
Citation
신라문화, v.57, pp 93 - 119
Pages
27
Indexed
KCI
Journal Title
신라문화
Volume
57
Start Page
93
End Page
119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5805
DOI
10.37280/JRISC.2020.12.57.93
ISSN
1229-0939
2714-0628
Abstract
이 글은 최근에 이루어진 황룡사와 그 남쪽광장의 발굴성과에 기초하여, 월성 왕궁과 그 四方에 건립된 國家寺刹의 前大路가 상호 어떠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는지를 검토하여 보았다. 이를 통해 신라 왕경 건설에 관철되고 있는 조영 원리와 계획성을 추출하고, 이들 국가사찰들이 왕궁을 장엄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음을 입증해보았다. 신라는 ‘龍宮’으로 불린 거대한 저습지였던 황룡사 자리에 평균 2m 높이의 흙을 쌓아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인공 대지로 탈바꿈시켰다. 자연을 극복한 이러한 자신감으로 인해 신라 왕권은 경주분지의 중앙에 위치한 월성의 장점을 살리면서, 월성의 북편, 즉 현재의 月池 지역으로 기존의 왕궁을 확대하는 滿月城의 건설을 기획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월성 왕궁의 사방에는 흥륜사(서북), 황룡사(동북), 영묘사(서남), 사천왕사(동남)라는 대규모의 국가사찰을 건립하고 이를 통해 왕궁을 장엄하였다. 특히 의도적으로 이들 국가사찰들의 前大路와 왕궁의 사방 대문이나 높은 누각을 시각적으로 연결하였다. 이로 인해 이들 국가사찰 前大路의 동서 장축방향이 흥륜사는 월성 北門을 향해 시계방향으로 내려가고, 영묘사는 그 반대로 월성 서문을 향해 시계반대방향으로 올라가는 특이한 방향의 동서도로들이 가설되었다. 한편 문무왕대에는 왕궁을 북편으로 확대하여 월지와 월지궁, 동궁(태자궁) 등을 조영하여 만월성을 완성하였다. 이에 황룡사 앞의 동서도로를 50m 폭으로 넓히고 만월성의 동문을 그 서단 중앙에 의도적으로 배치하였다. 월성 성벽 중 제일 높은 동남쪽 모퉁이에는 靑陽樓를 세우고, 사천왕사의 前大路로 이어지는 南路, 즉 동남방향 울산으로 가는 官道와 시각적으로 연결하였다. 또한 청양루 앞은 23m 폭의 남북도로를 통해 남쪽의 皇聖寺와 북쪽의 滿月城 東門이 연결되었다. 신라는 왕경 사방의 동서도로들이 서로 제각각의 기준으로 건설된 것 같지만, 사실 이들 국가사찰 전대로들의 동서 장축방향을 정확히 살펴보면, 모두 왕궁의 사방 대문과 누각으로 연결되어 왕경인들의 시각이 모두 왕궁으로 집중 수렴될 수 있도록 한 통일적 조영원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즉 월성 왕궁을 중심에 두고 마치 부챗살처럼 방사선으로 도로들이 뻗어나가고 있는 형상으로 도로를 가설하였다. 월성 왕궁을 장엄했던 국가사찰의 前大路와 그 방향성으로 볼 때, 신라의 방리구획은 황룡사 구역처럼 정확히 격자형으로 건설된 구역도 있었지만, 월성의 서편 구역처럼 방사선으로 펼쳐진 동서대로의 장축 방향으로 인해 사격자나 기형적인 형태의 방리 구획들도 많이 존재하였다. 물론 이러한 신라 왕경의 조영 원리는 都城의 한가운데에 宮城을 배치하는 『周禮』 考工記의 이념을 신라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라 왕경의 남북도로와 동서도로의 장축 방향은 ‘九経九緯’로 표현되는 고공기의 엄정함과는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라는 국가사찰의 前大路와 왕궁의 四方 大門들과 높은 樓閣들을 서로 시각적으로 연결하여 왕경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월성 왕궁으로 집중될 수 있도록 하였다. 역으로 신라의 왕은 왕궁 대문의 문루나 누각에 올라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국가사찰의 전대로나 도로를 통해 萬民을 굽어 살피고, 자신의 손짓 하나로, 행동 하나로, 신라의 세계가, 왕경인들의 일상이, 작동하는 위대한 왕의 힘을 만끽하고 과시하려 하였다. 이들 국가사찰의 전대로에서 개최되었던 다양한 불교의례들 역시 그 주재자가 사방 국가사찰들의 중심에 자리잡은 왕궁의 주인, 바로 신라국왕임을 드러내는 시각적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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