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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허 영규와 의승 사찰A Study on the Righteous Monks General Giheo Yeong-gyu and the Righteous Monks Temples

Other Titles
A Study on the Righteous Monks General Giheo Yeong-gyu and the Righteous Monks Temples
Authors
한상길
Issue Date
Dec-2024
Publisher
대각사상연구원
Keywords
기허 영규; 사명 유정; 의승장; 의승군; 갑사; 보석사; 가산사; 안심사; 칠백의총; Giheo Yeong-gyu; Sa-myeong Yujeong; the Righteous monks(Uiseung); Gapsa-temple; Gasana-temple; Boseoksa-temple; Ansimsa-temple. The Tomb of Seven Hundred Patriotic Martyrs.
Citation
대각사상, no.42, pp 135 - 168
Pages
34
Indexed
KCI
Journal Title
대각사상
Number
42
Start Page
135
End Page
168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56766
DOI
10.35768/taegak.2024..42.005
ISSN
1229-1080
Abstract
기허당(騎虛堂) 영규(靈圭)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승(義僧)을 일으켰다. 대사의 의승군은 1592년 7월 10일 1차 금산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다시 8월 1일 청주전투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그러나 8월 18일 2차 금산전투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출가수행자의 신분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승을 일으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역사에 등장한 지 불과 40일 만에 삶을 마감하였다. 이후 영규를 추모하는 여러 비석이 건립되고, 추모·제향이 잇따랐다. 이 과정에서 그에 관한 여러 기록이 산출되었는데, 대부분 영웅전과 같은 구전과 설화적인 내용들이다. 출생과 출가, 행장 등에 관한 기록이 일절 전하지 않는 현실에서 백성들은 영웅적인 무용담을 만들어냈다. 이 구전 설화를 비문에 채록하고, 비문을 본 사람들이 다시 과장, 윤색하면서 새로운 설화를 만들어 낸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영규는 출가수행자였음에도 그에게 불교는 온데간데없고, 유교적 충의와 기개를 지닌 인물로 규정되었다. 영규에 관한 평가는 영규 혼자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그를 따랐던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 8백 명 이상의 의승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규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실체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그가 수행하면서 머물거나, 의승으로 주둔한 사찰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전설과 설화로 점철된 그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가늠해 보고자 한다. 그 대상은 공주의 갑사와 담양의 서봉사, 금산의 보석사, 청주의 안심사, 옥천의 가산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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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Sang 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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