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後期 <瓢巖誌>를 통해 본 慶州 李氏의 瓢巖崇慕와 宣揚事業Gyeongju Lee's Respect for and Affection toward Pyoam(瓢巖) and Enhancement Business Examined through Pyoamji(瓢巖誌) in the late 0f Chosun Dynasty
- Other Titles
- Gyeongju Lee's Respect for and Affection toward Pyoam(瓢巖) and Enhancement Business Examined through Pyoamji(瓢巖誌) in the late 0f Chosun Dynasty
- Authors
- 오경후
- Issue Date
- Feb-2014
- Publisher
-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 Keywords
- 표암; 표암지; 알평; 경주이씨; 표암재; 지방사; Pyoam; Pyoamji; Alpyeong; Gyeongju Lee; Pyoamjae; local history
- Citation
- 신라문화, v.43, no.43, pp 433 - 454
- Pages
- 2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신라문화
- Volume
- 43
- Number
- 43
- Start Page
- 433
- End Page
- 454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4692
- ISSN
- 1229-0939
2714-0628
- Abstract
- <표암지(瓢巖誌)>는 경주 이씨 始祖 謁平公에 대한 기록이자 후손들의 선조에 대한 숭모와 가문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궤적의 면모를 상세히 수록하고 있다. 때문에 <표암지>는 한 집안의 족보적 성격을 지니면서, 고대사로부터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표암지>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시조 알평에 관한 후손들의 관심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인 조선후기에 와서야 비롯되었다. 始祖의 誕降地임을 확인하여 그 표식을 만들었고, 碑文을 지어 비석을 세우고 碑閣을 만들어 시조의 행적을 기리고 보존하였다. 이후 평균 20여 년마다 세 차례나 重修를 거듭했는데, 비와 비각이 東川의 잦은 침수 때문이었다. 결국 비와 비각을 표암 위의 산 쪽에 移建하였다. 비각의 건립은 조정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제단을 쌓기도 하였다.
후손들은 시조를 숭모하고 사적지를 보존하기 위해 친목계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이 노력은 1922년 후손 14인이 발기하여 시작한 瓢巖齋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齋舍의 건립은 중간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9년 만에 완성을 보았다.
시조의 탄강지의 확인 통해 행적을 기리고 후손들의 숭모와 유적지 보존을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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