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 율맥(律脈)의 성격 및 전개The Characteristics and Development of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of Yongseong Baek (白龍城)
- Other Titles
- The Characteristics and Development of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 of Yongseong Baek (白龍城)
- Authors
- 이자랑
- Issue Date
- Jun-2015
- Publisher
- 대각사상연구원
- Keywords
- Yongseong Baek(白龍城); the lineage of the transmission of the precepts(律脈); Daeeunnangoh(大隱朗旿); the Sutra of Brahmā’s Net; Seongok(禪谷); Jesan(霽山); Dongsan(東山); Goshimyeohyang(古心如響); Jesanjeongwon(霽山淨願); Hoeun(虎隱); 백용성; 율맥; 서상수계; 대은낭오; 『범망경』; 선곡; 제산; 제산정원; 동산; 고심여향; 전계사
- Citation
- 대각사상, no.23, pp 95 - 124
- Pages
- 30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대각사상
- Number
- 23
- Start Page
- 95
- End Page
- 124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4613
- ISSN
- 1229-1080
- Abstract
- 승려이자 독립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자신이 계승한 대은계의 율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대은계의 율맥이란 1826년에 조선의 승려인 대은낭오(大隱朗旿)가 율맥의 단절을 우려하며 서상수계를 통해 회생시킨 율맥이다. 대은의 율맥은 이후 금담(金潭), 초의(草衣), 범해(梵海) 등을 거치며 용성으로 이어졌다. 용성은 이러한 자신의 율맥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적극적으로 전계(傳戒)해 갔다.
본고에서는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용성 율맥의 성격과 전개를 다루고 있다. 첫째, 백용성의 전계사 문제이다. 용성은 스스로 자신의 전계사를 선곡(禪谷)이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선곡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동안 적지 않은 논의가 있어 왔다. 특히 제산(霽山)이라는 승려와의 동일인물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에서 선곡과 관련하여 검토된 제산은 제산정원(霽山淨願, 1862-1930)이다. 제산정원은 용성과 불과 2살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용성의 전계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에서 선곡과 제산의 동일 인물설은 부정되어 왔다. 이에 본고에서는 용성 당시 장로의 위치에 있던 호은(虎隱) 등에게 전계한 인물이 제산이었다는 여러 기록을 검토하며, 제산정원이 아닌 또 다른 제산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즉, 용성의 전계사 문제와 관련하여 제산은 여전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인식이다. 용성은 자신이 한국 자생의 대은계 서상수계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많은 승려들이 율맥을 잇기 위해 중국에 가서 수계식을 받고 돌아오는 경향이 있었지만, 용성은 중국의 고심여향이 회생시킨 율맥과 조선의 승려가 회생시킨 율맥을 동등한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승려인 자신은 당연히 조선에서 회생된 율맥을 잇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는 용성에게 있어 율맥이 승려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한국불교의 맥을 잇는 일임과 동시에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는 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셋째, 용성 이후 대은 율맥의 전개 문제이다. 수계 후 용성의 전계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 대은계 율맥에 대한 용성의 자부심과 열성적인 전계 활동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의 율맥이 제자들 대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계승되지 못한 점에 대해 고찰하였다. 특히 동산, 고암, 자운 등은 용성의 뒤를 이어 지계나 계율 선양 등에 있어 훌륭한 업적을 보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용성율을 전승하지 않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수계 상황이나 행보 등에 주목하며, 당시 율맥 전승에 대한 승려들의 인식 및 상황에 대한 세밀한 재검토의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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