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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海君·仁祖 年間 僧役의 實際The State of Monks’ Labor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nd King Injo in Chosun Dynasty

Other Titles
The State of Monks’ Labor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and King Injo in Chosun Dynasty
Authors
오경후
Issue Date
Feb-2015
Publisher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Keywords
Monks’ Labor; Monk Soldier; Namhansanseong Fortress; Daedong Law;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anchu Invasion of Korea in 1636; King Gwanghaegun; King Injo; 승역 승군 남한산성 대동법 임진왜란 병자호란 광해군 인조
Citation
한국불교사연구, no.6, pp 43 - 71
Pages
29
Journal Title
한국불교사연구
Number
6
Start Page
43
End Page
71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4606
ISSN
2287-562X
Abstract
광해군과 인조 대의 승역은 조선후기 불교계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 차례의 전란 이후 국방강화의 필요성에서 시작된 승려의 산성축조와 방어는 이후 국가재정의 부족과 부역자원의 확보를 위한 사회경제정책에 따라 그 부담이 확대되었다. 광해군대는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승려가 동원되어 산성축조와 궁궐축조를 담당하였다. 광해군은 전란 당시 승려들의 기여를 참작하여 국가적토목사업에 동원된 승려들에게 대가를 지급하기도 했다. 인조 대는 남한산성의 축조와 방어를 위해 많은 승려가 동원되었지만, 대가는 지급되지않았다. 국가재정의 부족과 승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원인이었다. 더욱이 인조 대는 남한산성이 축조되면서 전국의 승려가 정기적으로 동원되어 산성을 방어하는 승군제도가 창설되었다. 동원된 승려가 소비하는식량이나 경비는 자급자족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와 같은 불교계와 승려들의 부담은 대동법의 시행으로 더욱 무거워졌다.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수취체제의 개선으로 인한 공백은불교계와 승려들의 몫이 되었다. 이것은 조선후기 불교계가 피폐하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의 사회계제적 상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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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Kyeong H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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