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村落文書」의 작성연대에 관한 종합적 고찰A comprehensive study on the record date of the Silla Village Register
- Other Titles
- A comprehensive study on the record date of the Silla Village Register
- Authors
- 윤선태
- Issue Date
- Dec-2022
- Publisher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Keywords
- 新羅村落文書; 正倉院; 華嚴經論; 周曆; 書體; Silla Village Register(SVR 新羅村落文書); Shoso-in(正倉院); Buddhist- sutra; Hwaumkyeong-ron(華嚴經論); Calendar of the Zhou Dynasty(周曆); calligraphy Chinese character(書體)
- Citation
- 한국고대사탐구, no.42, pp 317 - 350
- Pages
- 34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국고대사탐구
- Number
- 42
- Start Page
- 317
- End Page
- 350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2316
- DOI
- 10.35160/sjekh.2022.12.42.317
- ISSN
- 2092-5727
- Abstract
- 촌락문서는 폐기된 후 『華嚴經論』의 ‘제7질’을 만드는데 재활용되어 일본 東大寺의 正倉院에 입고되었다. 이 경질의 쇼소인 입고과정을 소상히 담고 있는 『正倉院文書』와 『東大寺要錄』 등을 분석하고, 고대 일본의 『華嚴經論』 유통상황을 아울러 고려해볼 때, 이 경질은 신라학승인 審詳(審祥)이 소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촌락문서의 작성연대는 서원경이 설치된 685년과 심상의 몰년 하한인 751년 사이의 ‘을미년’인 695년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唐의 勅令에 따라 744년부터 758년까지 ‘年’이라는 글자 대신에 ‘載’라는 글자를 엄격히 사용하였다. 그런데 촌락문서에는 ‘年’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755년은 문서의 작성연대가 될 수 없다. 한편 則天武后는 국호를 당에서 ‘周’로 고치고, 永昌元年(689) 11월을 載初元年 正月로 바꾸는 歲首 변경을 단행하였다. 이 조치로 기존의 正月은 ‘一月(壹月)’로 바뀌었고, 이는 700년까지 지속되었다. 『三國史記』로 알 수 있듯이, 신라도 이 측천무후의 周曆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촌락문서의 D촌에는 ‘甲午年壹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壹月’ 표기는 촌락문서의 작성연대가 695년임을 무언으로 알려주고 있다.
한편 촌락문서에는 ‘妻’라는 글자가 <事 아래에 女>를 쓴 ‘’라는 독특한 異體字로 기록되어 있다. 촌락문서 전후의 고대동아시아 자료 속에서 이 처의 이체자가 출현하고 소멸해간 추이를 보면 촌락문서의 작성연대가 8세기로 내려갈 수 없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종래 촌락문서의 작성연대에 대해서는 695년설, 755년설, 815년설 등이 제기된 바 있지만, 처의 서체로 볼 때도 695년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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