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조 7년(1461) 사리분신(舍利分身) 상서의 출현과 역사적 의미The Emergence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Sarira Incarnation in the 7th year of the Joseon King Sejo's reign (1461)
- Other Titles
- The Emergence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Sarira Incarnation in the 7th year of the Joseon King Sejo's reign (1461)
- Authors
- 고정혁; 최연식
- Issue Date
- Feb-2024
- Publisher
- 한국불교연구원
- Keywords
- King Sejo; Buddhist miracle; sarira incarnation; royal Buddhism in early Joseon dynasty; royal authority; 세조; 불교적 상서; 사리분신; 왕실불교; 왕권
- Citation
- 불교연구, no.60, pp 189 - 235
- Pages
- 47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불교연구
- Number
- 60
- Start Page
- 189
- End Page
- 235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21430
- DOI
- 10.34275/kibs.2024.60.189
- ISSN
- 1225-3154
- Abstract
- 본 연구는 朝鮮 世祖 7년(1461) 舍利分身 祥瑞를 새롭게 검토하여 세조대 佛敎的 祥瑞의 출현 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재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實錄 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楞嚴經諺解 「御製跋」・「韓繼禧跋」과 「興天寺新鑄鐘銘並序」, 「如來現相記」 등 세조 당대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하여 사리분신의 발생 경과와 기념 과정을 밝혔다. 세조 7년 사리분신은 그해 5월 13일 孝寧大君이 주최한 檜巖寺 법회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회암사 중수와 관계된 경찬법회의 한 부분으로 해석되며, 왕실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世宗~文宗代 왕실 주도의 의도적인 사리이적 연출의 연장선으로 파악된다. 효령대군이 分身舍利를 진상하자 세조는 景福宮 內殿(含元殿)에 이를 맞아들였다. 5월 18일까지 이곳에서 봉안, 공양이 이루어지며 이적의 의미는 훨씬 확대되었다. 首陽大君 시절부터 사리이적의 정치적 유용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세조는 재위 7년 5월 사리분신을 국가의 상서로 격상시킴으로써 불교적 영험을 자신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세조는 赦宥, 楞嚴經諺解 간행, 興天寺 舍利閣 重修 및 梵鐘 조성과 같은 기념 조치를 추진하였다. 여기에는 백성들에게 친숙한 불교신앙을 기반으로 유혈 정변을 일으킨 잔인한 군주의 면모를 벗어버리고 慈悲心에 의한 善政을 광범위하게 각인시키는 한편, 불교적 聖王인 ‘法王’으로서의 위상을 강조하여 국왕의 권위를 초월적 수준으로 승화시키는 데 궁극적인 의도가 있었다. 세조는 유교 정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국가 운영에 불교의 정치・사회적 역할을 극대화하였다. 이를 상징하는 불교적 상서는 세조가 왕권의 초월적 형상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새로운 통치정책이었으며, 재위 7년 사리분신 상서의 출현은 초월적 절대군주라는 세조의 이상군주관을 현실화할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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