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화계사의 역사와 인물 ― 조선왕실과 대원군가의 불교인식 및 고봉과 숭산 ―History and Figure of Samgaksan Hwagyesa ―Buddhism Recognition of Joseon Dynasty's Royal Family and Daewongun Family and Gobong and Sungsan―
- Other Titles
- History and Figure of Samgaksan Hwagyesa ―Buddhism Recognition of Joseon Dynasty's Royal Family and Daewongun Family and Gobong and Sungsan―
- Authors
- 고영섭
- Issue Date
- Feb-2014
- Publisher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 Keywords
- 탄문; 보덕암; 화계사; 원찰; 서평군; 덕흥대원군; 추사서파; 흥선대원군; 영선군; 홍월초; 고봉 경욱; 숭산 행원; 백상원; 관음선종; 탄문Tanmun; 보덕암Bodeokam; 화계사Hwagyesa; 원찰vow temple; 서평군Seopyeong Gun; 덕흥대원군Deokheung Daewongun; 추사서파Chusa Calligraphy School; 흥선대원군Heungseon Daewongun; 영선군Yeongseon Gun; 홍월초Hongwolcho; 고봉 경욱Gobong Gyeonguk; 숭산 행원Sungsan Haengwon; 백상원Baeksangwon; 관음선종Kwan Um School of Seon
- Citation
- 한국불교사연구, no.4, pp 170 - 240
- Pages
- 71
- Journal Title
- 한국불교사연구
- Number
- 4
- Start Page
- 170
- End Page
- 240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8501
- ISSN
- 2287-562X
- Abstract
- 이 논문은 경산 사찰문화의 집대성지이자 진경시대 문화의 본산지인 삼각산 화계사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이 사찰은 삼미(三美) 즉 꽃이 아름답고[華美] 계곡이 아름답고[溪美] 절이 아름답다[寺美]고 알려져 왔으며, 경산(京山)의 중심사찰로 자리해 오고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해 온 화계사는 역사와 문화에 걸맞는 인물들의 주요 무대가 되어 왔다. 고려 광종의 때에는 왕사와 국사를 역임한 탄문(坦文法印, 900~975)이 주석하였다.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화계사의 전신인 보덕암은 경산의 명찰로서 자리하였다.
조선 중기 이래 왕실의 인척이었던 서평군 이공과 덕흥대원군 집안,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흥선대원군 집안의 원찰이 되면서 사격과 사세가 드높았다. 특히 흥선대원군과 그의 손자인 영선군, 대왕대비 조씨, 왕대비 홍씨, 경빈 김씨, 엄상궁(순헌황귀비, 엄비), 김상궁, 황상궁(무심화), 남상궁, 이상궁 등이 자주 드나들며 후원 불사를 하여 ‘궁절’이라고 불렸다. 이처럼 고려초기에서 조선중기까지의 보덕암과 조선 중후기 및 대한시대 이래 천년 고찰 화계사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역사의 한복판에 자리한 사찰’이었다.
조선 후기 이래 화계사는 추사서파(秋史書派)의 수제자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과 신관호를 필두로, 정학교와 박춘강, 오세창과 이남식 등이 찾아와 편액과 주련을 남김으로써 조선후기 진경문화의 본산이 되었다. 더욱이 선말 한초에는 고종 왕실과 대척점에 있던 흥선대원군과 영선군을 비롯한 방외인들의 집합소였으며, 개화승과 개화사상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당시 화계사는 염불도량으로 자리해 오고 있었다. 대한시대 초기에는 화계사 주지 월초 거연(月初 巨然, 1858~1934)이 봉원사(奉元寺) 주지 보담(寶潭)과 함께 신학문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불교연구회를 창설하고 근대적 교육기관인 동국대학 전신 명진학교를 개교(1906)하였다. 대한시대 중기 이후에는 선찰(禪刹)로서의 위상을 확립시킨 고봉 경욱(古峰景昱/煜, 1890~1961), 덕산 종현(悳山宗晛, 1895~1986), 숭산 행원(崇山行願, 1927~2004) 등이 머무르며 한양(서울)의 대표 사찰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해 왔다.
이후 화계사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비구 수행관인 백상원을 건립하여 한국불교의 미래를 이끌어갈 종비생들이 수행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오고 있다. 근래에는 경허-만공-고봉으로 이어지는 선맥을 이은 숭산 행원의 해외전법 교두보가 되고 있다. 특히 삼각산 국제선원과 계룡산 무상사(국제선원)를 통해 현강(玄岡圓機)/ 법경(法鏡許仁居士)/ 수봉(秀峰無等)/ 대광(大光道眼)/ 대봉(大峯道門)/ 성향(性香法音)/ 우봉(宇峰法無) 등 7인의 전법제자와 지도법사 및 수계상좌 등 여러 명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면서 화계사는 ‘인물의 중심부를 형성한 사찰’로서의 위상을 확보해 가고 있다. 앞으로는 화계사는 관음선종(觀音禪宗)을 창종한 숭산 행원의 가풍을 계승하여 서울의 사찰을 넘어 한국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인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세계의 사찰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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