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번주의 조집은 두 가지 형식, 즉 경사에 조집하는 것과 도독부에 조집하는 것이 있었는데, [모두] 四夷ㆍ萬國이 朝賀한다는 색채를 지녔다. 당대의 羈縻州는 그 숫자가 많고 매 주가 조집을 위해 왕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막대하였기 때문에 조정은 그 조집 인원을 제한하지 않을 수 없어 많은 변경[邊遠] 번주의 조집 자격을 취소하고 또 그 조집의 횟수를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번주가 도독부에 조집하는 형식이 당조와 번주 교류의 중요 경로 및 통치 강화의 중요 방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