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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오도처와 화성 당항성The study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 middle way as the non-duality in the study of the three treatises and the middle way free from dualistic extremes

Other Titles
The study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 middle way as the non-duality in the study of the three treatises and the middle way free from dualistic extremes
Authors
고영섭
Issue Date
Aug-2017
Publisher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Keywords
원효; 오도처; 견당사; 죽령로; 계립령로; 화성; 당항성; 당은포; 元曉; 悟道處; 遣唐使; 竹嶺路; 鷄立嶺路; 華城; 黨項城; 唐恩浦; Wonhyo; place of enlightenment; envoy to Tang; Juk ridge route; Gyerip ridge route; Hwasung; Danghang fortress; Dang-un port
Citation
신라문화, v.50, pp 49 - 80
Pages
32
Indexed
KCI
Journal Title
신라문화
Volume
50
Start Page
49
End Page
80
URI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6668
DOI
10.37280/JRISC.2017.08.50.49
ISSN
1229-0939
2714-0628
Abstract
이 논문은 분황 원효(芬皇 元曉, 617~686)의 유학로와 화성의 당항성의 관계를 통하여 그의 오도처를 구명해 본 글이다. 신라의 견당사들은 출발지인 경주에서 목적지인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평균 3개월에서 4개월까지 소요하면서 다녀왔다. 이들의 행로 결정은 육로와 수로뿐만 아니라 해로를 선택할 때도 바다와 육지 모두의 계절적 요인을 크게 고려하였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서 볼 때 원효와 의상 또한 견당사들의 행로 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효의 의상은 두 차례의 유학을 시도하였다. 제1차 유학은 고구려 영토로 나아갔기 때문에 죽령로를 택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제2차 유학은 계립령로를 택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계립령로는 화성 당은포-여주(수로)/죽산(육로)-충주-연풍-문경-함창-상주-선산-경주로 이어지는 육로이다. 원효와 의상이 충주를 지나 육로로 죽산을 거쳐 당은포로 왔는지, 아니면 충주에서 여주로 와서 수로로 당은포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양만의 당은포 즉 당항진이 속해 있는 당주의 경계를 관리하는 성이 경기도 화성의 당항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죽산의 육로를 거쳐 돌아가는 길 보다는 여주의 수로를 거쳐 가로지르는 길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 보행자에게 수로는 육로보다 인체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원효와 의상이 잠을 잔 무덤이 오늘날의 화성 신흥사와 평택 수도사 어느 곳이기 보다는 당시 남양만 당항진 즉 당항포의 관할지가 당성이었고, 당성이 현재의 경기도 화성에 있으며, 당시 중부횡단항로로 나아가는 출발지점이 남양만의 당은포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효의 오도처는 당항성 인근의 어느 무덤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김영이 쓴 「월광산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月光山圓朗禪師大寶禪光塔碑」의 대통이 ‘직산’(樴山)에서 세 달 동안 선정(禪定)에 들어 있었다면 그곳은 무덤 혹은 무덤이 있던 자리일 수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곳이 원효의 수행처(修行處)로 볼 수 있을지언정 원효의 오도처(悟道處)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원효의 오도처 즉 영장처(靈場處)가 무덤이었다면 그곳이 현재의 사찰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통(大通)이 세 달 동안 선정에 들었던 곳이 직산의 어느 무덤일 수 없으며, 그 무덤에 절을 지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효의 오도처는 남양만 당은포를 향해 나아가던 당항성 인근의 어느 무덤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원효의 오도처는 경기도 화성의 당항성 인근의 무덤으로 볼 때 당시 신라의 견당사들이 오고간 육로와 수로 및 해로와 계절적 요인 등의 정합성을 맞추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논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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