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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재일 불교유학생들의 귀국 이후 동향 - 불교연구자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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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uthor고영섭-
dc.date.accessioned2024-08-08T02:01:12Z-
dc.date.available2024-08-08T02:01:12Z-
dc.date.issued2015-02-
dc.identifier.issn1225-0945-
dc.identifier.uri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6050-
dc.description.abstract이 논문은 일제강점기(1910~1945) 재일 불교유학생들의 귀국 이후 동향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조선조 오백여년 동안 유자들에게 억압당해 왔던 불자들은 전통불교의 계승과 혁신을 위한 남다른 고뇌를 안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조선조 오백년의 억압에 뒤이어 또다시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기에 ‘민족의 독립’과 ‘종교의 자유’를 모색하기 위한 뜨거운 가슴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인 붓다의 가르침을 세계관으로 받드는 불교청년들은 대한의 독립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불교 지식인들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해외 유학에서 찾고자 있었다. 불교 지식인들은 유학의 경험을 통해 불교 교단을 개혁하고 민족 독립을 모색하려 하였다. 하지만 국비 유학생과 달리 공비 유학생이었던 불교유학생들은 해외 유학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다수의 유학생을 파견할 수 있었던 사찰들은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본사급이었다. 이들과 달리 寺勢가 크지 않은 사찰들은 유학생 1명을 파견하지가 쉽지 않았다. 유학생 한 명을 파견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찰에서 큰 경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대한시대에 일본 불교 유학생들의 출신 사찰은 전국의 대찰인 본사급 사찰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일제강점기 승려들은 불교도로서의 친연성과 장학금 및 기숙사 등을 고려하여 일본의 불교계 종립대학을 선호하였다. 해서 대한불교 임제종과 같은 선종계통인 조동종립대학과 임제종립대학 및 천태종립대학에 다수의 학생들이 유학하였다. 이들 종립대학 이외에도 도성입성 해금을 완수한 사노 젠레이(佐野前勵) 소속의 일련종 입정대학과 오쿠무라 엔신(奧村円心)소속의 정토진종 대곡파인 동본원사가 세운 대곡대학, 정토진종 본원사파가 세운 용곡대학, 정토종이 세운 종교대학 등에 학적을 두었다. 이외에 일본대학과 일본 근대 불교철학자로서 평생 불교의 철학적 정립과 불교혁신운동을 주도한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 1858~1919)가 세운 동양대학 등의 일반 사립대학과 동경제대 등 국립으로도 유학을 갔다. 일본 이외에 중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이들도 동일한 고민과 선택을 한 경우가 있었다. 이들 불교 유학생들의 신분이 승려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종립대학을 피해 사립대학을 선택해 유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불교 환경과 다른 무대에서 불교 연구를 하고자 했고 귀국해서는 국내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불교활동을 하였다. 불교 연구에 종사한 유학생들은 동국대학교와 일부 사립대학 및 종립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불교 문학, 사학, 철학, 종교, 예술 등을 연구하였다. 그들이 마련해 놓은 연구 성과는 오늘 한국불교 연구의 기본 토양이 되었다. 일본 불교유학생들은 불교계의 대표적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말과 글에 능했으며 외국 유학을 통해 익힌 국제 감각에 힘입어 귀국 이후에는 정계와 교육계 및 종교계와 문화계에 몸담을 수 있었다. 이들은 『불교』 등의 잡지에 논설을 투고하면서 불교 개혁에 동참하였고 이것을 통해 식민지의 현실을 개혁하고 불교를 혁신하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불교교단에 능동적으로 발언하였다. 당시 교단은 불교 인재 양성을 위한 일본 유학생 파견이 ‘전공변경’과 ‘결혼’ 및 ‘환속’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인식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종교와 국가 및 교단과 사회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준비 부족이라는 불교 교단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불교 정화(1954~1962~1970)의 터널을 거치며 깊은 상처를 안았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한국불교의 대중화와 보편화를 지향할 때 불교 인재 양성과 불교 미래 향방 부분은 불교의 모든 지혜를 총동원해서 풀어나가야 할 중도 지혜의 활로는 미래 불교의 과제인 불교 인재 양성과 배치일 것이다.-
dc.format.extent49-
dc.language한국어-
dc.language.isoKOR-
dc.publisher한국불교학회-
dc.title일제강점기 재일 불교유학생들의 귀국 이후 동향 - 불교연구자를 중심으로 --
dc.title.alternativeA study on the Trend After Return Home of Buddhist Students studying in Japan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ing on the Scholars for Buddhist Studies --
dc.typeArticle-
dc.publisher.location대한민국-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한국불교학, no.73, pp 291 - 339-
dc.citation.title한국불교학-
dc.citation.number73-
dc.citation.startPage291-
dc.citation.endPage339-
dc.identifier.kciidART001967058-
dc.description.isOpenAccessN-
dc.description.journalRegisteredClasskci-
dc.subject.keywordAuthor官費-
dc.subject.keywordAuthor貸費-
dc.subject.keywordAuthor公費유학생-
dc.subject.keywordAuthor사노 젠레이-
dc.subject.keywordAuthor오쿠무라 엔신-
dc.subject.keywordAuthor이노우에 엔료-
dc.subject.keywordAuthor불교 정화-
dc.subject.keywordAuthorstudent studying aborad on government scholarship-
dc.subject.keywordAuthora loan scholarship-
dc.subject.keywordAuthorstudents supported with public expense-
dc.subject.keywordAuthorSano Genrei-
dc.subject.keywordAuthorOkumura Enshin-
dc.subject.keywordAuthorInoue Enryo-
dc.subject.keywordAuthorBuddhist Pur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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