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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의 선법 전래와 나말 려초의 구산선문 형성- 북종선과 남종선의 전래와 안착 -
| DC Field | Value | Language |
|---|---|---|
| dc.contributor.author | 고영섭 | - |
| dc.date.accessioned | 2024-08-08T02:00:51Z | - |
| dc.date.available | 2024-08-08T02:00:51Z | - |
| dc.date.issued | 2014-08 | - |
| dc.identifier.issn | 1229-0939 | - |
| dc.identifier.issn | 2714-0628 | - |
| dc.identifier.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5886 | - |
| dc.description.abstract | 이 논문은 신라 중대의 북종선(北宗禪) 전래와 하대의 남종선(南宗禪) 수용 및 안착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당시 불교계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정계 왕족들에게 밀려난 방계 왕족과 두품 귀족 출신 및 그 자녀들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였다. 이들에게 접목된 새로운 사상은 선종(禪宗)이었고 새로운 탈출구는 당나라였다. 정계 왕족들에게 밀려난 방계 왕족들과 두품 귀족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출사’(出仕)와 자기의 면목을 찾기 위한 ‘출가’(出家)를 위해 당나라로 향하였다. 당대(唐代) 선법의 황금시대에 참여하였던 출가자들은 자기를 성찰하고 자신을 확립하는 선법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치열한 수행과 빼어난 지혜로 당대 선법의 정수를 흡수하였다. 이들은 법랑(法朗)-신행(神/信行)-준범(遵範)-혜소(惠炤)-법량(法諒)/혜은(慧隱)-지증(智證)-양부(楊孚)로 이어지는 북종 선법과 접목하였고, 뒤이어 도의(道義)가 전해 온(821) 남종 선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도의에 이어 귀국한 남원 실상사의 홍척(洪陟)과 곡성 동리산의 혜철(慧徹) 그리고 상주 장백사에서 하동 쌍계사로 옮긴 혜소(惠炤) 등은 왕실의 극진한 존경과 함께 지방 호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삼국 통일 이후 신라 사상계를 주도하였던 화엄학승들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사상 전개의 노력을 보이지 않고 안으로는 지배세력의 보호아래 안주하면서 선학들의 저술들에 대한 훈」고학적인 주석학에 빠져있었다. 밖으로는 선왕들의 봉덕(奉德)과 추선(追善) 공양(供養) 의례에만 관심을 두었다. 방계 왕족들도 자신들의 선왕 열조를 봉덕하기 위해 사찰을 축조하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다. 구산선문의 개조 및 개산조들은 왕실의 화엄교단에 맞섰던 방계 왕족들과 중앙의 진골 귀족들과 연루된 지방호족들의 도움에 의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터를 잡았다. 방계 왕족들과 귀족들은 산문 건립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산문의 형성은 중앙 왕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비교적 중앙의 통제에서 자유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산문은 왕실 주변의 화엄교학과 마찬가지로 인적 물적 토대 등에서 왕실과 깊이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각 산문의 개조 혹은 개산조들과 그 제자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기존의 중문-탑-금당-강당-회랑의 평지가람 배치방식을 그대로 활용한 예들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선사들은 중국의 북종과 남종을 수입하면서도 그 안에는 독자적인 가풍을 담았다. 무염의 유설토(有舌土) 무설토(無舌土)론과 종래 선법의 단초를 새롭게 해석해낸 범일의 진귀조사(眞歸祖師)설, 도선의 무설지설(無說之說) 무법지법(無法之法), 순지의 표상현법(表相現法)과 삼변성불편(三遍成佛篇)에 기초한 위앙선풍(潙仰禪風) 등은 중국선과 한국선과 변별되는 독자적인 시선을 열었다. 이들의 사상들은 인간들의 삶의 구체적인 층위들에 다가가지 못하는 화엄교학과 달리 인간들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구체적인 층위들에 섬세하게 다가가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구산선문의 선사들은 이 땅에 살면서 이 땅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여 이 땅(海東)의 선(禪)으로 정착시켰다. 따라서 신라 중대 북종의 전래와 하대 남종의 수용으로 형성된 나말 여초의 구산선문은 이들 선사상의 한국적인 집대성(集大成)이자 한국선의 구심점(求心點)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
| dc.format.extent | 32 | - |
| dc.language | 한국어 | - |
| dc.language.iso | KOR | - |
| dc.publisher |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 - |
| dc.title | 신라 중대의 선법 전래와 나말 려초의 구산선문 형성- 북종선과 남종선의 전래와 안착 - | - |
| dc.title.alternative | Propagation of Seon in Mid Silla Age and Formation of the Nine Mountain Sect of Seon in Early Goryeo Age - Introduction and Settlement of Northern School and Southern School - | - |
| dc.type | Article | - |
| dc.publisher.location | 대한민국 | - |
|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 | 신라문화, v.44, pp 187 - 218 | - |
| dc.citation.title | 신라문화 | - |
| dc.citation.volume | 44 | - |
| dc.citation.startPage | 187 | - |
| dc.citation.endPage | 218 | - |
| dc.identifier.kciid | ART001910190 | - |
| dc.description.isOpenAccess | N | - |
| dc.description.journalRegisteredClass | kci | - |
| dc.subject.keywordAuthor | 북종(northern school) | - |
| dc.subject.keywordAuthor | 남종(southern school) | - |
| dc.subject.keywordAuthor | 구산선문(nine mountain sect of seon) | - |
| dc.subject.keywordAuthor | 유설토 무설토론(theory of To have speech land & Without speech land) | - |
| dc.subject.keywordAuthor | 진귀조사설(theory of seon master of Jingu) | - |
| dc.subject.keywordAuthor | 무법지법 무설지설(Without teaching of teaching) | - |
| dc.subject.keywordAuthor | 위앙선풍(Without speech of speech Kuei-ang seon styl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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