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승군제도의 불교사적 의미The Buddhist Historical Meaning of Monk Army in the Late Joseon Dynasty
- Other Titles
- The Buddhist Historical Meaning of Monk Army in the Late Joseon Dynasty
- Authors
- 고영섭
- Issue Date
- Mar-2014
- Publisher
- 한국사상문화학회
- Keywords
- 선교양종; 승군; 의승군; 승군총섭제; 승역; 임제태고법통설; 삼문수업체계; 호국; Seon school and Doctine school; monk army; monk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system of the director in command of monk army; compulsory labor of monks; assertion on the patriarchate of Imjae-Taego; system of study on the three gates; defense of country
- Citation
- 한국사상과 문화, no.72, pp 205 - 236
- Pages
- 32
- Indexed
- KCI
- Journal Title
- 한국사상과 문화
- Number
- 72
- Start Page
- 205
- End Page
- 236
- 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5782
- ISSN
- 1229-1749
- Abstract
- 조선후기 승군제도는 당시 불교의 사회적 역할, 불교의 사회경제적 실태를 보여주는 주요한 기제였다. 임란과 호란을 전후하여 僧軍總攝制 아래 통솔되는 불교계의 현실에서 僧役은 불교계가 대내외에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조선 중기 이래 불교계는 禪敎兩宗이 혁파된 이래 교단이라는 求心은 상실했지만 승군총섭제를 통해서나마 遠心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원심을 動因으로 삼아 불교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여한 ‘義僧軍’을 통해 어느 정도 구심을 회복해 갈 수 있었다.
17세기 전반에 이르러 승군이 상설 제도화 되어 ‘승군제’로 정착되고, 중반에 이르러 승군제가 확대되면서 팔도도총섭 중심으로 이루어진 求心은 ‘臨濟太古法統說’과 ‘三門修業’ 체계를 수립하는 데에 하나의 動因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불교계는 高僧碑의 건립과 僧侶文集의 간행을 통해 승려들의 자의식을 형성하고 인식틀을 확보하였다. 아울러 승려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위상이 변모되면서 公人으로서 승려들의 사회적 역할도 보다 적극적으로 요청받기 시작하였다.
승군제도는 불교와 승려의 위상을 높여 불교와 僧人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여 주었으며, 불교의 대사회적 존재감을 확장시켜 조선후기 이래의 불교 존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유교의 통치 이념아래 시설된 승군제도는 내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승군제도는 사찰의 승역 부담을 확대시켰다는 점에서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반면 승군제도는 유교의 통치이념 아래에서 불교의 대사회적 존재감을 확보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승군제도가 참여불교로서의 護國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승려들의 사회적 역할과 역사적 존재감을 표출할 수 있었던 주요한 기제였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두 시각에서 승군제도의 영향과 불교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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