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ed 0 time in
광해군의 불교인식
| DC Field | Value | Language |
|---|---|---|
| dc.contributor.author | 고영섭 | - |
| dc.date.accessioned | 2024-08-08T01:31:41Z | - |
| dc.date.available | 2024-08-08T01:31:41Z | - |
| dc.date.issued | 2013-02 | - |
| dc.identifier.issn | 2287-562X | - |
| dc.identifier.uri | https://scholarworks.dongguk.edu/handle/sw.dongguk/15466 | - |
| dc.description.abstract | 이 논문은 조선 중후기의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안으로는 자강(自强)을 꾀하고 밖으로는 기미(羈縻)를 취하여 조선을 구하려한 광해군의 불교인식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조선조 역사에서 광해군(光海君)은 연산군(燕山君)과 함께 ‘왕’(王)이 아니라 ‘군’(君)으로 불리고 ‘실록’(實錄)이 아니라 ‘일기’(日記)로격하된 왕이다. 그는 죽어서도 무덤이 강등되어 ‘릉’(陵)이 아니라 ‘묘’(墓)로 불려지고 있다. 이후 조선 유자들의 대다수 문집에서 폐위된 임금이라는 ‘폐주’(廢主) 혹은 어둡고 용렬한 왕이라는 ‘혼군’(昏君) 또는 계모와 동생을 죽인 ‘패륜아’(悖倫兒)로 불렸고 왕명 역시 광조(光祖)나 광종(光宗)이 아니라 ‘광해주’(光海主)로 기술되었다. 그리고 그의 재위 연간은 어둡고 문란한 시대라는 ‘혼조’(昏朝)라고까지 매도되었다. 하지만 근래의 연구에서 광해군은 대동법(大同法) 시행과 화폐 주조, 그리고 은광을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와 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탁월한 외교감각으로 실리외교를 수행한 현명한 군주로 보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광해군은 분조(分朝) 시기는 물론 명(明)의 쇠멸과 후금(淸)의 등장 및 일본(日本)의 재편과 같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재위 15년 동안 전후 문화 복구사업을 통한 안으로의 자강(自强)과 밖으로의 기미(羈縻) 정책을 통해 백성들의 윤택을 최우선시한 ‘지혜로운’ 군주였다. 광해군은 제1차 분조(分朝)시기와 제2차 무군사(撫軍司) 활동을 통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수많은 승려들의 애국심을 보며 불교에 대한 종래의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은 선조 이래의 상궁 김개시(金介屎)와 모녀관계를 맺으며 왕실녀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고 왕실불교에 깊은 영향을 미친 예순(禮順)과 같은 비구니와 교유함으로써 기복적인 신앙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또 유자들에게 술승(術僧) 또는 광승(狂僧)의 풍모로 비쳐진 성지(性智)와 가까이 지냄으로써 광해군의 불교 인식은 기복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고 불교를 사회 속으로 확장시키거나 발전시키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부휴 선수(浮休善修)와 같은 선승과 그 제자인 벽암 각성(碧巖覺性)과 고한 희언(孤閑熙彦)과 같은 선사들과 교유함으로써 자신의 원찰인 봉인사(封印寺)에 사리를 봉안하고 세자의 원찰인 청계사(淸溪寺)에서 재회를 시설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광해군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선조시대 이전과는 분명 달랐다. 광해군은 분조시기를 통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던지는 승려들을 통해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경직된 유교의 사유만이 아니라 유연한 불교의 사유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불교에 대한 왕과 유자들의 부정적 인식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분조 시기의 불교 이해와 함께 광해군 시대의 불교 지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광해군은 분조(分朝) 시기는 물론 명(明)의 쇠멸과 후금(淸)의 등장 및 일본(日本)의 재편과 같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재위 15년 동안 전후복구를 통한 안으로의 자강과 밖으로의 기미(羈縻) 정책을 통해 백성들의 윤택을 최우선 순위에 둔 ‘영명한’ 군주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가 경직된 유교만이 아니라 유연한 불교를 수용하고, 민족문화의 계승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외래문화의 수용도 배제하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광해군에게 불교는 보다 유연한 사유를 지닐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의 마음으로 나타났다. | - |
| dc.format.extent | 52 | - |
| dc.language | 한국어 | - |
| dc.language.iso | KOR | - |
| dc.publisher |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 - |
| dc.title | 광해군의 불교인식 | - |
| dc.title.alternative | Gwanghaegun's Recognition over Buddhism | - |
| dc.type | Article | - |
| dc.publisher.location | 대한민국 | - |
|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 | 한국불교사연구, no.2, pp 229 - 280 | - |
| dc.citation.title | 한국불교사연구 | - |
| dc.citation.number | 2 | - |
| dc.citation.startPage | 229 | - |
| dc.citation.endPage | 280 | - |
| dc.identifier.kciid | ART002679871 | - |
| dc.description.isOpenAccess | N | - |
| dc.subject.keywordAuthor | 광해군 | - |
| dc.subject.keywordAuthor | 分朝 | - |
| dc.subject.keywordAuthor | 撫軍司 | - |
| dc.subject.keywordAuthor | 羈縻정책 | - |
| dc.subject.keywordAuthor | 願刹 | - |
| dc.subject.keywordAuthor | 봉인사 | - |
| dc.subject.keywordAuthor | 청계사 | - |
| dc.subject.keywordAuthor | 齋會 | - |
| dc.subject.keywordAuthor | 부휴 선수 | - |
| dc.subject.keywordAuthor | 벽암 각성 | - |
| dc.subject.keywordAuthor | 고한 희언 | - |
| dc.subject.keywordAuthor | Gwanghaegun | - |
| dc.subject.keywordAuthor | Bunjo | - |
| dc.subject.keywordAuthor | Mugunsa | - |
| dc.subject.keywordAuthor | Gimi policy | - |
| dc.subject.keywordAuthor | the temple of the vow | - |
| dc.subject.keywordAuthor | Bonginsa | - |
| dc.subject.keywordAuthor | Cheonggyesa | - |
| dc.subject.keywordAuthor | an assembly for commandment | - |
| dc.subject.keywordAuthor | Buhyu Seonsu | - |
| dc.subject.keywordAuthor | Byeokam Gakseong | - |
| dc.subject.keywordAuthor | Gohan Huieon | - |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30, Pildong-ro 1-gil, Jung-gu, Seoul, 04620, Republic of Korea+82-2-2260-3114
Copyright(c) 2023 DONGGUK UNIVERSITY. ALL RIGHTS RESERVED.
Certain data included herein are derived from the © Web of Science of Clarivate Analytics. All rights reserved.
You may not copy or re-distribute this material in whole or in part without the prior written consent of Clarivate Analytics.
